7월의 어느 날 밤 8시30분. 서울 잠실 구장에서 라이벌 LG와 두산의 프로야구 경기가 진행되는 도중 전광판과 조명등이 꺼져버렸다. 구장은 순식간에 어둠에 사로잡혔고, 관객들은 두려움에 휩싸였다. 서울 지역에 대규모'블랙아웃'정전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같은 시간 강남대로 일대는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길을 비추던 대로변 매장의 화려한 조명과 가로등이 순식간에 꺼지고 강남역 사거리 교통신호등이 모두 작동을 멈춰 버스를 비롯한 차량들이 뒤엉켜 버린 것이다.
강북 대단위 아파트 단지들에서는 엘리베이터에 갇혀 119에 구조를 요청하는 시민들이 속출했다. 시내 소형 병원에서는 생명유지장치가 작동을 멈춰 환자들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달리던 지하철은 순간 전자제어장치가 마비되면서 대형 인명사고로 이어지는 아찔한 순간을 맞아야 했다.
'블랙아웃'의 공포가 이 같은 가상 시나리오가 아닌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소방방재청은 21일 오후 2시부터 20분간 '블랙아웃' 정전사태에 대비해 전국적으로 위기대응 훈련을 실시한다고 19일 밝혔다. 정전을 대비한 민방위 훈련은 국내에서 최초로 이뤄지는 것으로, 그만큼 현재 전력수급상황이 심각하다는 의미이다.
정부는 지난해 9월 15일 유례 없는 '블랙아웃' 정전사태가 발생한 이후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기온이 예년보다 훨씬 높고 강수량이 적어 냉방을 위한 전기 수요가 급증해 블랙아웃의 공포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정부는 마침내 이 같은 우려감을 반영, 전국적으로 위기대응 훈련을 실시하기로 했다. 과연 이 같은 위기 속에서 시민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것 인가.
21일 오후 2시 정각에 사이렌이 울리면 각 가정이나 상가, 기업체 단위로 절전 행동에 참여하면 된다. 민방위 훈련처럼 특별히 다른 장소로 대피할 필요는 없다. 산업체들은 조업 시간을 조정하고, 일반 건물에서는 냉방을 중단한다. 최소한의 전자제품만 사용한다. 관련 부처들은 실제상황을 연상하듯 승강기 내 갇힌 인명구조와 병원ㆍ지하철 정전대응 훈련, 교통 통제훈련 등을 각각 실시한다.
오후 2시부터는 10분간 예비전력이 200만㎾ 미만으로 하락하는 경계단계를 발령하고 가정과 상가, 기업체에서 불요불급한 전기를 차단한다. 이어 오후 2시10분부터는 예비전력이 100만㎾ 미만으로 하락하는 심각단계가 발령돼 서울 등 7대 도시 28개 시범지역에서 계획단전(순환정전)이 이뤄지고 오후 2시 20분 훈련경보가 해제된다. 그러나 KTXㆍ철도ㆍ항공ㆍ선박은 정상 운행된다. 병원도 정상 진료하며 2012년 여수세계엑스포가 진행 중인 여수지역은 이번 훈련에서 제외된다. 이기환 소방방재청장은 "이번 훈련은 국민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가 매우 중요하다"며 "국민들이 올 여름 절전을 생활화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훈련의 실효성 여부를 놓고는 논란이 많다. 회사원 김모(36)씨는 "훈련은 근본적인 대책 없이 국민에게 절전만 강요하는 것"이라며 "정부가 정전 방지책 마련과 위기 발생시 긴급복구 및 구체적인 대응책을 제시하지 못할 경우'블랙아웃'공포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안아람기자 onesh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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