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초부터 지속되고 있는 중부권 가뭄이 좀체 끝날 기미가 안 보인다. 잠시 올라와 남부에 비를 뿌렸던 장마전선도 중부권에 닿지 못하고 제주도 남쪽 아래로 물러났다. 근 100년 동안 볼 수 없었던 최악의 가뭄이다. 작물이 시들고 농산물 가격이 뛰면서 여기저기서 한숨이 나오지만, 뾰족한 수를 찾기 힘든 상황이다.
물 건너간 해갈
기상청은 19일 "제4호 태풍 '구촐'이 일본 남쪽 해상에서 북동쪽으로 이동함에 따라 제주와 남해안 지역에 다소 많은 비를 내렸던 장마전선이 이날 오후부터 점차 남하해 당분간 제주도 남쪽 먼 바다에 머물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정준석 기상청 기후예측과장은 "5호 태풍 '탈림'의 이동 경로에 따라 한반도 주변 기압계가 유동적이긴 하지만 오는 25일까지는 중부 지역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비 예보가 없다"고 말했다.
최근 중부권 가뭄은 지독하다. 지난달 1일부터 이달 18일까지 전국에 내린 비의 양은 62.4㎜로 평년(165.8㎜)의 38.7%에 불과했다. 특히 서울의 강수량(10.6㎜)은 평년(171㎜)의 6.2%에 그치면서 1908년 기상 관측 이래 가장 적었다. 경기 지역 역시 예년의 8.5%에 머물렀다. 충남과 전북은 각각 23.5%와 24.7%였다.
104년 만의 가뭄
동전의 양면처럼 이상고온 현상도 이어지고 있다. 같은 기간 서울의 최고 기온 평균은 26.5도를 기록, 기상 관측 사상 가장 높았다. 평년보다 무려 2.1도나 높다. 104년 동안 볼 수 없었던 최악의 무더위인 셈이다. 특히 이날 서울 낮 최고 기온은 33.5도까지 치솟아 6월 기온으론 2000년대 들어 두 번째 더운 날로 기록됐다. 인천(33.8도)과 경기 수원(33.9도)에선 6월 최고 기온이 경신됐다.
이번 가뭄은 올해 유난히 강하게 발달한 이동성 고기압 때문이다. 4월 하순부터 시베리아 지역의 눈이 빠르게 녹는 바람에 태양열 에너지가 대기권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대지에 흡수돼 대기가 건조하고 뜨거워졌다. 이 대륙 기단에서 분리된 고기압이 한반도로 건너와 비구름을 동반한 저기압의 북상을 막으면서 이상고온 현상과 가뭄이 나타났다는 게 기상청의 설명이다.
하늘만 쳐다보는 농가 초비상
가뭄 피해는 심각하다. 경기ㆍ충남 등 가뭄이 심한 지역에서 양파와 마늘, 고추, 감자 등 밭작물의 생육이 나빠져 농가들에 초비상이 걸렸다. 충남권의 931개 저수지 중 465곳의 담수율이 30%를 밑도는 등 전국 저수율이 절반 아래로 떨어져 물 부족을 호소하는 논 농가가 태반이다. 농림수산식품부가 농가 피해 지원을 위해 지난 7일 충남에 25억원을 긴급 투입한 데 이어 14일 경기와 충남, 전북, 전남, 경북에 50억원을 추가로 내놓고 18일엔 중부 지역의 관정 등 용수 개발을 위한 비용으로 50억원을 더 쏟아 부었지만 역부족이다.
밭작물은 출하량이 크게 줄면서 가격이 치솟았다. 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19일 현재 양파 ㎏당 전국 평균 소매 가격은 1,749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146원에 비해 53%나 올랐다. 말린 고추 가격도 600g당 1만6,033원으로 전년 동기 가격 대비 1.4배에 이른다. 감자(㎏당 2,581원→3,364원)와 깐 마늘(㎏당 6,694원→6,889원)의 값도 큰 폭으로 뛰었다.
답답한 건 이런 사정에도 하늘만 바라보는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국립기상연구소 이철규 수문기상연구팀장은 "구름이 없는 상태에선 인공강우 실험조차 불가능한 데다, 강우 범위가 협소할 수밖에 없는 인공강우가 가뭄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정준석 과장은 "(자연적인) 수증기 공급이 없는 한 인위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수단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기상청은 이달 말 정도나 비가 와 가뭄 해소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권경성기자 ficci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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