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부한 전력 마음 놓고 쓰자.' 1964년 4월 한국전력이 국내 일간지 1면 하단 광고로 실었던 문구다. '당신의 생활을 즐겁게 하자면 값싼 전기로 새로운 설계를'이라는 소제목도 붙어있다. 앞치마를 두른 채 TV 냉장고 선풍기 라디오 전기포트 전기다리미 전기프라이팬 등에 둘러싸인 주부가 등장하는 삽화와 발전소 사진도 광고에 들어있다. 풍부한 전력에 대한 홍보는 오일쇼크에도 불구하고 70년대까지 계속됐다. 당시에 정말 그렇게 전력이 풍부했을까?
■ 이듬해 2월 같은 신문의 비판기사를 보면 앞서 한전 광고에 대해 조금 이해가 된다. "과연 서울거리는 '풍부한 전력, 여기 있다'는 듯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이 밤하늘을 수놓게 되었으며, '전기를 더 보내달라'는 생산공장의 비명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정부는 '남아돌아가는 전력'을 가장 큰 업적의 하나로 내세우는데 인색하지 않았으며 전력회사는 장단을 잘 맞추었다. 그러나 과연 전기는 남아돌아가고 있나? 도회지는 모르나 농촌에선 어림도 없는 얘기다."
■ 전력은 시민생활이나 기업의 생산활동, 경제성장에 매우 중요한 것이고, 특히 물가에 큰 영향을 미친다. 1960년대 초 박정희 정권은 '풍부한 전력'을 치적으로 삼아 도시 밤거리의 네온사인을 경제발전의 표상으로 보여주려 했다. 하지만 호롱불 천지인 농어촌에서는 전력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한 것에 불만이 많았던 모양이다. 또 해방 이후 1964년 9월까지 무려 14차례나 전기요금을 인상해 한전이 엄청난 이익을 얻으면서 여론의 비난이 빗발쳤다.
■ 전기요금은 '정치 요금'이다. 밑지는 장사를 하는 한전은 수익을, 지식경제부는 전력수급을, 기획재정부는 물가를, 청와대는 민심을 걱정하기에 요금이 정치적으로 결정된다. 전기는 남아도 보관이 안되고, 모자라도 수입을 못하는 독특한 재화다. 전력소비가 많은 여름철을 앞두고 요금을 올리자는 주장이 나오지만, 요금인상만으로 수급문제가 해결될지 의문이다. 혹시 한여름 정전을 볼모 삼아 요금인상을 유도해 한전의 부실을 털어내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
조재우 논설위원 josus6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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