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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시집 '나는 미남이 사는 나라…' 낸 이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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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시집 '나는 미남이 사는 나라…' 낸 이우성

입력
2012.06.19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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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에게서 나왔다/ 예전에 나는 나로 가득차 있었다// 입안에서 우성이를 몇 개 꺼내 흔든다/ 사람들은 어떤 우성이를 좋아하지// 우성이는 어둠이라고 부르는 곳에서 살았다/ 그때는 우성이가 다를 필요가 없었다 심지어 미남일 필요조차/ 그러나 가장 다양한 우성이는 우성이었다'('사람들'에서)

이우성(32) 시인이 첫 시집 <나는 미남이 사는 나라에서 왔어> (문학과지성사 발행)를 펴냈다. 200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래 3년여 만이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의 관심은 온통 '나'에 집중돼 있다.('나'라는 시어가 100여 번 등장한다) 이는 '나'라는 존재의 고유성을 증명하기 위한 노력으로 보이는데, 시인의 고투는 '미남이 사는 나라'로 표상되는 자신의 신화적 기원을 창조하는 데에까지 나아간다. 시인은 "긴 시간, 삶을 다해 시를 쓰려면 일단 나를 알아야 한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꽃잎을 닮은 빛을 말하고 싶던 살 같은 것들을 입을 물고 있는 물음을 태어났던 숫자 이전을// 사람에게 내 얘기를 할 수 없다니// (중략) // 한 방향으로 걷는 다리를 세우고 앉는다/ 있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러나 방에 들어와 있는 나는 발굴한 자(字) 같다'('오래전의 내가 분명해지는 때'에서)

'모든 존재는 고유하다'는 명제는 시인에게 꼭 방증하고픈 사유 대상인 동시에, 옳다고 믿는 신념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는 다시 태어났어 머리 대신 사과를 얹고/ 늦었지만 밝게// 구름이 지나갈 때 바람이 지나갈 때 나는 뿌리를 감각적으로 배치할 수 있어/ 나는 우월의 기원이야/ 너에게도 이어져 있어/ 못생긴 너에게도'('사과얼굴'에서)

시인은 쉽고 평이한 시어를 쓰지만 의미를 해독하기는 쉽지 않다. 필요하다 싶은 어구가 지워진 채로 문법적으로 완결되지 않은 시구가 많기 때문이다. '어른은 권한을 담은 것/ 쌓이는 구석// 겨울의 수영장/ 세번째 스윙/ 저녁이 되는 집'('변신') '그러나 우리의 벼랑을/ 우리의 벼랑을/ 우리의 벼랑은 우리의 에어플레인/ 불빛과 오해와/ 항해'('이음'에서)

문법의 미완성이 의미의 불완전함으로 이어지는 듯하지만, 곱씹어 읽을수록 요령부득의 시들이 절묘한 의미망을 구축한다. 어른으로 '변신'한다는 것은 꾸역꾸역 권한이 담긴 채로 구석에 쌓이는, '겨울의 수영장'처럼 을씨년스럽고 '세번째 스윙'처럼 허무한 존재가 된다는 것. 우리 사이를 가로지르는 '벼랑'은 돌이킬 수 없는 단절이 아니라 '오해' 속에서도 서로에게 가닿는 '항해'를 멈추지 않게끔 우리를 추동하는 '에어플레인'일 수 있다는 것. "늘 지우면서 시를 쓴다"는 시인의 독특한 시적 전략이자 개성을 문학평론가 강계숙씨는 "복잡한 미니멀리즘"이라고 적절히 명명했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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