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말 개막한 뮤지컬 '위키드'가 주요 인터넷 예매 사이트에서 3주째 판매 순위 1위를 달리고 있다. 브로드웨이 대표 흥행 뮤지컬답게 풍성한 볼거리와 철학적 감동을 갖췄다는 반응과 함께 내한한 호주 배우들의 연기력에 대한 평가도 호의적이다. 여기에 우리말 번역문을 띄운 자막도 관객의 관심거리다. 은어나 이모티콘 사용이 과하다는 의견도 일부 있지만 웃음이 유발되는 정확한 지점을 짚어 준 재치 있는 번역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공연을 관람한 극작가 배삼식씨는 "자막이 마치 직접 연기를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번역자가 충분히 각 장면을 느끼고 즐기면서 한 작업이라는 인상"이라고 말했다.
이 작품은 뮤지컬 작곡가 이지혜씨가 번역했다. '폴 인 러브'(2006) '첫사랑'(2007) '고궁 대장금'(2008) 등의 창작 뮤지컬 작곡자인 그는 '아이 러브 유'(2004) '맨 오브 라만차'(2005) '프로듀서스'(2006) '금발이 너무해'(2009) 등으로 일찌감치 외국 뮤지컬 번역과 개사(改詞) 부문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다져 왔다. "한국 배우가 연기하는 라이선스 공연이 아닌 실시간으로 영어 대사가 함께 흘러나오는 외국 배우 공연의 자막 번역은 처음이라 부담스러웠다"는 이씨는 "내가 느낀 공연의 재미가 객석에 잘 전달되고 있다니 다행"이라며 쑥스러워 했다.
▦배우 입장을 고려한 번역
그는 번역을 제안 받자마자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을 다시 관람하며 관객의 웃음이 터져 나오는 지점을 확인했다. "외국 배우들이 자신들이 의도한 유머에 관객이 웃지 않을 경우 당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모티콘과 '멘탈붕괴' '샤방샤방' 등의 신조어를 과감히 사용한 것도 그래서다. "개인적으로 유행어를 그리 좋아하지는 않지만 현대 뮤지컬인 이 작품 원작의 유머를 제대로 살리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정서와 리듬감을 살려라
그가 외국 뮤지컬을 번역할 때 가장 중시하는 것은 원작 국가의 정서를 우리 느낌으로 옮기는 일이다. 예컨대 '이 기분은 뭘까?'(What is this Feeling?)라는 삽입곡에서 글린다와 엘파바가 서로에 대한 혐오를 표현하며 'Loathing' 이라는 대사를 내뱉을 때 자막에는 '밥맛'이라는 단어가 뜬다. "다소 오래된 느낌이라 조금 걱정했지만 '비호감' '재수없어' 등의 말보다 강한 인상을 준다고 판단했다"는 설명이다.
특히 유머는 리듬과 호흡이 중요하다. 그는 "대개 대화에서 유머는 문장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기 때문에 원문의 내용을 그대로 우리말로 번역하기보다 문장 내 농담의 위치를 동일하게 맞추는 데 신경을 썼다"고 말했다.
글린다가 모리블 총장을 감금해야 한다며 'Captivity'를 'Cap-ti-vi-ty'로 끊어 발음하는 장면에서도 리듬감을 살리고자 했다. '대박'을 강조한 '대 to the 박'이라는 유행어를 본뜬 '감 to the 금!'이라는 자막은 그렇게 나왔다.
▦디테일의 힘
이씨가 뮤지컬을 번역할 때 신경 쓰는 것 중 하나는 말투다. '맨 오브 라만차'의 경우 캐릭터별로 누가 누구에게 존댓말을 쓰고 예스러운 말투를 쓰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우리말 특유의 존대어는 관계를 나타내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위키드'에서도 엘파바가 처음 오즈의 마법사를 만났을 때는 높임말을 사용하지만 마법사의 실체를 알고 난 후인 2막에서는 말을 놓는다.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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