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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미얀마 민주화와 로힝야족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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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미얀마 민주화와 로힝야족의 운명

입력
2012.06.19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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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젊은이들을 만난 게 12, 13년 전이다. 인터뷰 때문에 만났지만, 기사와 상관 없이 그들의 삶이 궁금했다. 그들은 1988년 군부에 반대하는 민주화 시위에 나섰다가 극심한 탄압을 받자 한국으로 피신하듯 들어왔다고 말했다. 하필 한국에 온 이유에 대해서는 한국이 지난한 투쟁을 거쳐 민주화를 이뤘고 그래서 자신들의 어려운 처지를 이해하고 도움을 줄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서였다고 했다. 고국으로 다시 돌아가 반드시 민주화를 이루겠다고 다짐하듯 말할 때 그들의 눈은 반짝반짝 빛났고 표정은 더 진지해졌다. 하지만 얼굴에는 피곤하고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막상 찾아온 한국에서 그들은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한 채 불안한 신분으로 가난하게 살고 있었다. 낯설고 배타적인 문화 속에서 외로움을 느꼈으며 고국의 민주화 운동과 관련한 별 도움도 받지 못했다. 그들의 고단한 이국 생활을 듣고도 현실적으로 별 도움을 줄 수 없어 미안함과 안타까움을 느꼈다.

외부 세계와 단절한 채 강경 정치를 이어가던 미얀마가 민주화와 개방으로 돌아선 것을 보면서 그때 만난 동생 같은 미얀마 젊은이들의 막연한 얼굴을 새삼 떠올렸다. 고국으로 돌아갔는지, 다짐을 어느 정도 지켰는지, 현재의 미얀마 상황에 만족하는지 등이 궁금해졌다.

미얀마에 변화의 바람이 분 것은 지난해 3월 테인 세인 대통령이 이끄는 민간 정부가 발족하면서다. 50년 군부 통치를 끝내고 출범한 민간 정부는 정치범을 석방하고 야당의 선거 참여를 허용했으며 외국인의 직접 투자를 보장하는 등 개혁 조치를 내놓았다. 미국이 22년 만에 미얀마 대사를 지명하는 등 국제사회도 호응했다. 미얀마 민주화의 상징인 아웅산 수치는 제도권 정치에 진입했고 15년 가택연금을 마친 뒤 지금은 유럽을 순방 중이다. 재빠르고도 광범위해서 미얀마의 변화는 널리 칭찬을 받았다. 하지만 최근 일어난 종교ㆍ민족 갈등은 이 나라의 변화와 미래를 마냥 긍정적으로만 전망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미얀마 서부 라카인에서 일어난 불교도와 이슬람교도의 충돌은 이슬람교도가 불교도 소녀를 성폭행한 것이 발단이라고 하는데 그것이 100% 맞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의 충돌로 이슬람교도 로힝야족이 큰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이다. 로힝야족은 50명 이상이 숨졌고 가옥 수천 채를 방화로 잃었다. 급기야 배를 타고 이웃 방글라데시로 피신했지만 그곳에서도 외면만 받았다. "우리를 받아들이지 않을 바엔 차라리 죽여달라"고 애원했지만 그것이 냉정한 현실을 바꿀 수는 없었다.

미얀마에는 정부가 공식 인정한 소수민족만 135개에 이른다. 전체 인구의 40% 정도가 소수민족이다. 이들은 1948년 미얀마가 영국에서 독립한 뒤 민주화와 자치권을 요구하며 정부와 갈등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박해를 받았다. 로힝야족의 수난은 소수민족 중에서도 특히 두드러진다. 방글라데시에서 건너와 라카인주에 80만명 정도가 엄연히 정착해 있는데 미얀마 정부는 이들을 불법 이주민으로 간주하고 시민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정부만 그런 게 아니라 미얀마 주민들도 대부분 로힝야족을 적대시한다. 그런 차별을 견디지 못해 2008년 일자리를 찾아 태국으로 갔지만 1,200여명이 추방되고 300명은 바다에 빠져 죽은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들을 흔히 '동남아의 집시'로 부르는 것은 그런 차별과 배척을 받았기 때문이다. 유엔은 이들을 가장 많이 차별 받는 민족의 하나로 꼽는다.

로힝야족의 수난과 관련해 특히 안타까운 것은 민주화의 진행으로 표현의 자유가 확대되면서 네티즌들이 이들에게 대대적인 반감을 나타낸 사실이다. 민주화가 약자를 탄압하는 역설적 상황이 일어난 것이다. 다수가 소수를 포용하지 못하고 민족과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충돌과 갈등이 일어난다면 민주화도 빛을 잃을 수 밖에 없다. 로힝야족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 미얀마는 진정한 민주국가로 거듭날 수 없다.

박광희 국제부장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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