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4~9월 서울 여의도 성모병원은 백혈병 환자들에게 건강보험 규정상 허용되지 않은 처방과 치료를 했다. 환자를 살리고 싶었고, 가족에게 동의도 구했으며, 필요한 비용만 받았을 뿐 병원이 따로 이익을 챙기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는 불법이었다. 규정상 허용되지 않는 '임의 비급여'로 환자에게 돈을 받을 경우 모두 돌려줘야 한다. 그 해 12월 환자와 유족 200명은 집단 민원을 제기했고, 성모병원은 2008년 보건복지부로부터 과징금 96억9,044만원,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환수금 19억3,808만원의 행정처분을 받았다. 식품의약품안전청 등 보건당국은 안전성ㆍ유효성 검증이 부족하다고 판단하는 처치ㆍ처방은 병원이 돈을 받고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이를 어기고 진료행위 및 진료비 청구를 하는 것이 임의 비급여다.
이 사건은 의료계를 들끓게 했다. 환자를 어떻게든 살리려 했던 의사들이 불이익을 받았기 때문이다. 성모병원은 소송을 제기해 1ㆍ2심에서 승소한 데 이어 18일 대법원에서도 승소취지의 판결을 받아냈다. 어떤 경우에도 임의비급여를 허용하지 않던 대법원 판례는, "의학적 필요성과 환자 측의 동의가 있다면 병원의 입증책임 하에 예외적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판례로 변경됐다.
그러나 이번 판례 변경으로 현재 임의 비급여 제도 운용에 달라질 것은 없어 보인다. 이 사건은 법원 판례만 바꾼 것이 아니라, 그 동안 정부의 임의 비급여 구제제도를 대폭 개선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지금의 제도에서는 성모병원과 같은 사건이 발생할 수 없다. 2006년 혈액암을 제외한 일반암은 병원에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신청하면 의학적 타당성이 있다고 인정될 경우, 규정을 벗어난 처치라도 환자 본인 부담 100% 조건으로 적용할 수 있는 '사전승인 제도'가 도입됐다. 이 제도에서 백혈병과 같은 혈액암은 빠져서 성모병원 사건이 불거졌고, 이후 복지부는 2007년부터 혈액암도 적용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바꿨다. 지난해 583건의 사전신청 중 524건(89.9%)이 받아들여졌다.
또 잘못 쓰면 오히려 악화될 수 있는 항암제를 제외한 일반약제는 허가를 초과한 처방이 필요하다고 여겨질 경우 먼저 투여를 한 후 타당성을 평가 받는 '사후승인 제도'도 도입됐다. 지난해 126건의 사후승인 신청 중에서 99건(78.5%)이 받아들여졌다.
대법원의 판례변경에 따라 임의 비급여 처벌에 반발해 소송을 제기한 병원들은 개별적으로 구제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특히 사전ㆍ사후승인 제도가 도입되기 전 성모병원과 같은 사례들은 소송을 통해 상당수 구제될 가능성이 높다.
또 정부의 항암제 '사전승인 제도'를 거쳤다고 하더라도 사전승인기간이 너무 길어서 승인이 나기 전에 먼저 투여했을 경우도, 병원의 적정성 입증여부에 따라 구제될 가능성이 있다. 대법원은 "절차에 소요되는 시간을 고려해 볼 때 임의 비급여 진료행위를 회피하기 어려운 상황"도 예외적인 인정 요건으로 명시했다. 항암제 사전승인 처리 기간은 2007년 37일에서 지난해 19일로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대법원은 임의 비급여 금지의 필요성은 인정했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병원들이 이윤추구나 요양급여비용심사의 회피 등의 동기로 비급여 진료행위를 선호할 수 있고, 그 결과 가입자 등은 건강보험 혜택을 누릴 권리를 침해 당해 의료비 부담이 증가할 수 있으며, 그 규모나 정도가 심할 경우 국민건강보험제도의 실효성이 크게 훼손될 가능성을 부정하기 어렵고, 나아가 의학적으로 충분히 검증되지 못한 진료행위가 이루어질 우려도 있다"며 "임의 비급여 진료행위의 예외적 인정은 신중히 해야 한다"고 밝혔다.
다만 대법원은 이번 사건의 경우 임의 비급여 지급행위에 대한 병원 측의 입증이 부족했다고 판단, 사건을 파기환송해 항소심에서 추가적인 재판이 진행되도록 조치했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정재호기자 next88@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