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와 기아차는 13년 동안 한 지붕 아래 생활해 온 형제 사이. 한 살림을 차린 후 세계 자동차 업계 5위에 오를 만큼 함께 승승장구해 왔지만 아무래도 '형만한 아우 없다'는 게 정설이었다. 아우(기아차)의 약진이 눈부셨지만 그래도 형(현대차)의 그늘에 가려 제대로 빛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올 들어 상황이 달라졌다. 기아차는 세계 곳곳에서 현대차의 성적을 크게 앞지르며 그간의 설움을 단박에 날려버릴 기세다. 이른바 'K(기아차 시리즈)의 돌풍'이다.
18일 유럽자동차협회(ACEA)에 따르면 기아차는 지난 달 유럽에서 전년동기대비 29.9% 증가한 3만556대를 판매했다. 현대차 판매량(3만4,448대)을 불과 4,000여대 차이로 바짝 추격했다. 경제위기를 겪는 유럽시장에서 세계 유수의 완성차 메이커들이 참패를 당하는 것과 달리 현대차는 5.7%의 판매신장률로 크게 선전했지만 기아차의 경이적 성장세 앞에서 빛이 바랬다. 업계 관계자는 "주요 시장에서 기아차가 현대차의 판매에 가장 근접한 사례"라며 "이런 추세라면 하반기엔 역전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기아차는 유럽뿐 아니라 중국 미국 등 주요 시장에서 올 1~5월 누적 신장률이 적게는 7%포인트, 많게는 15% 포인트 가량 현대차에 앞서있다. 내수판매율은 4% 가량 감소했지만, 이마저도 현대차(-5.6%)보다 나은 성적이다.
사실 기아차는 불과 5년 전까지도 '골칫거리 동생'이었다. 과도한 수출비중과 잇단 영업적자, 차입금 부담 등 경영 여건은 개선조짐이 보이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이런 기아차가 반전 모멘텀을 찾은 계기를 2008년 '소울'의 출시로 본다. 송선재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인수 초기부터 현대차와 생산 플랫폼을 공유하면서 이미 품질에는 차이가 없었던 상황"이라며 "(정의선 부회장 주도의) 우수 디자인이 가미된 신차가 잇따라 출시되면서 브랜드 이미지가 질적으로 전환됐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도 "과거엔 기아차 이미지가 현대차 아래였던 게 사실이지만 이제 세계시장에서도 그런 차이가 거의 없어졌다"며 "특히 올 상반기 K9의 출시가 기아차 변신의 마침표를 찍은 격"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고유가와 경제위기 여파로 경차 선호도가 높아진 것도 소울이나 모닝 등 경차의 라인업이 강한 기아차에 도움이 됐다는 분석이다.
여세를 몰아 기아차는 올 2분기 사상 첫 영업이익률 10% 돌파와 10년 만에 차입금을 모두 털고 순현금 상태로 돌아서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것으로 점쳐진다. 송 연구원은 "순현금 상태로 전환하는 것은 기아차가 재무적으로도 글로벌 선두업체로 올라서는 상징적인 사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반기 전망도 쾌청하다. 7월 신형 쏘렌토에 이어 11월에는 K7 새 모델이 선보인다. 특히 9월에는 소형차 K3의 출시로, 이른바 '코드명 K'시리즈(K3-K5-K7-K9)가 완성된다. K3는 작년 글로벌 시장에서 39만여대를 판매한 포르테의 후속 모델로 10월 중국, 내년 초 북미시장에서 차례로 출시될 예정이다.
이제 관심은 '형과 아우'의 관계설정이다. 세계 자동차회사마다 도요타의 렉서스나 BMW의 미니처럼 고가 혹은 저가의 별도 브랜드를 보유한 경우는 많지만, 현대차와 기아차처럼 비슷한 라인업을 갖춘 두 브랜드가 공존하는 자동차 회사는 전무하다.
때문에 기아차의 성장세가 가속화될 경우 현대차의 시장까지 잠식하는, 일종의 '카니벌라이제이션(제살깎기)'상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윤필중 삼성증권 연구원은 "올해 출시된 K9의 경우 내수시장에서 제네시스와 상호영역을 침범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카니벌라이제이션'보다는 '시너지'쪽이 더 우세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송선재 연구원은 "아반테와 포르테, 쏘나타와 K5 등 현대차와 기아차는 교대로 신차를 발표하며 서로의 판매공백을 메우는 보완적 관계를 유지해왔다"며 "제살을 깎는 상황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환구기자 redsu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