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교 안 남고 정·관계로 떠날텐데…" 논문 지도부터 허술
논문 표절, 중복게재 등 연구부정 논란은 고위 공직자 인사청문회 및 자질검증 국면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메뉴다. 대학에서 교편을 잡아온 교수가 공직에 진출하는 일이 많기도 하거니와, 언젠가부터 정치권에서 석ㆍ박사학위가 그럴듯한 자격증처럼 여겨지면서 졸속으로 학위를 받았다가 선거운동이나 청문회 때 문제가 불거지는 것이다.
하지만 정관계 인사의 논문부정 논란을 윤리성이 떨어지는 그들의 문제라고 치부할 수 있을까. 대충 학위를 남발하고 연구부정을 눈감아 준 학계의 관행이 정관계 인사의 검증과정에서 드러났을 뿐이라는 지적이다. 애초에 학계가 논문심사를 엄격히 했다면 누가 공직에 나가더라도 뒤늦게 문제될 일이 없으리라는 것이다. 대학가에서는 "개인의 양심에 화살을 돌릴 것이 아니라, 부실한 논문을 걸러내지 못한 대학이 가장 뼈아프게 반성하고 학계의 풍토부터 개선해 나가야 한다"는 반성이 새어 나오고 있다.
지도교수는 뭘 했나
무소속 문대성 의원(부산 사하갑)은 지난달 국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국민대에서 표절논란 예비심사를 맡았던 한 교수가) 내 논문의 지도교수였다. 자기가 내 논문을 통과시켜놓고는 200% 표절이라고 하더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느냐"고 말했다. "문 의원의 논문은 표절이 맞다"는 것이 학술단체협의회, 국민대 등 학계의 중론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황당한 발언이지만, 지도교수 역시 '부실 표절 논문'의 책임을 피해 갈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지주형 학술단체협의회 학술위원장(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교수)은 "부실한 논문 지도 문제가 심각하다"며 "애초에 학계에서 연구할 목적이 아닌 이들이 석ㆍ박사 과정에 몰리다 보니 일부 교수들은 아예 학문을 할 사람들을 위한 지도와 학위만 원하는 사람들 지도를 구별해 한다"고 말했다. 계속 연구자로 공부할 제자가 아닌 이상에는 애초에 논문 지도단계에서부터 세심하게 연구 내용을 살펴보지 않고 빨리 학위를 받아 졸업하게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 그는 "특히 실용학문의 경우 대외 활동을 할 목적으로 학위취득을 하는 학생이 많아, 연구윤리 위반에 대한 문제의식도 없고 표절이 관행이 돼 있어 구체적인 조사가 필요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박기범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역시 "논문을 지도하는 단계에서부터 실험은 어떻게 되고 있는지, 데이터의 신뢰도는 있는지 등 지도교수가 지당히 확인해야 할 것들을 확인만 했다면 문대성 의원 사례 같은 완전 표절 논문은 애초에 통과될 수도 없었을 것"이라며 "문제 논문을 검증할 때 논문 지도 및 심사교수들의 책임도 함께 확인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심사 때도 토론 없어
하지만 여타 학과 교수들과 지도교수가 함께 논문을 검토하고 통과 여부를 결정하는 논문 심사 단계에서는 부실 논문이 걸러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작정하고' 대필이나 표절을 저지르는 경우 적발하기가 쉽지 않은데다 심사 자체가 꼼꼼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한 국립대 교수는 "석사논문은 통상 3명 교수가, 박사논문은 4~5명 교수가 심사하는 방식은 미국과 우리가 같은데, 미국처럼 논문의 내용과 질을 놓고 공방하고 자신의 학자적 신념을 걸고 '이건 통과 못한다'고 반려시키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심지어 심사할 논문을 당일에 갖고 오는 문화가 당연시 돼 적어도 1주일 이전에 받아 읽고 공방을 벌이는 미국과는 대조적"이라고 말했다.
교수 간에도 적극적으로 토론하고 공방하지 않는 분위기도 부실논문 통과에 한 몫 한다. 국립대 한 교수는 "교수들이 상호 견제하며 엄격하게 학위를 줘야 하는데, 한국에서는 적극적으로 다른 교수 학생 논문에 대해 지적을 하면 '지금 나와 싸우자는 것이냐'는 식의 반응이 돌아오니 문 의원 논문 같은 것들도 다 통과 돼 나중에 큰 문제가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낙마하면 그만 아니다
논란이 됐더라도 일단 의원직에 낙마하거나 공직에서 사퇴하고 나면 논문의혹은 흐지부지돼 더 이상 문제 삼지 않는 것을 불문율처럼 받아들이는 세간의 태도도 문제다. 2007년 제자 논문 표절의혹으로 취임 56일만에 사퇴한 이필상 고려대 전 총장의 경우, 총장 재직 당시 교수의회가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해 논문 6편은 표절, 2편은 중복게재 됐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했지만, 이 전 총장이 "도의적 책임"을 거론하며 사퇴하자 대학 당국은 "더 이상 논문 문제는 거론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하태훈 고려대 교원윤리위원장(법과대학 교수)은 "문대성 의원 문제도 그냥 쉽게 국회의원직을 그만뒀으면 논문은 더 문제 삼지 않았을 것"이라며 "공직후보자 역시 낙마하고 나면 문제를 삼지 않는데 학위를 박탈하고 어떤 식으로든 학계의 공적인 제재를 하고, 학교 및 학회에도 공개적으로 심의 결과를 알리는 것을 당연시해야 실질적으로 표절 및 연구부정이 예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배성인 학술단체협의회 운영위원장(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은 "정치인 연구윤리는 정치인, 학계 어느 한쪽의 문제가 아니라 양쪽이 동시에 혁신을 이뤄야 하는 문제"라며 "유명인사 학벌주의에 대학이 이용당하지 않도록 진입 장벽을 높이고 대학이 학위를 남발하지 않아야 불필요한 사회적 논쟁으로 인한 낭비도 막고 사회 전반적인 학문윤리 수준이 향상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동현기자 nani@hk.co.kr
채희선기자 hschae@hk.co.kr
김혜영기자 shine@hk.co.kr
■ "손님 떨어질라" 교수가 논문 대필자 소개까지
서울 유명 사립대학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A씨는 박사과정을 밟고 있던 4년 전 지도교수로부터 부탁 아닌 부탁을 받았다. 특수대학원인 경영전문대학원에 다니는 B씨가 일을 하면서 학교를 다니기 때문에 바빠서 논문 쓸 시간이 없으니 석사학위 논문을 대신 써주라는 것. 교수는 논문의 주제는 자신이 준비했으니 부담 갖지 말라며 A씨에게 논문 대필을 맡겼고, 연구비로 쓰라고 돈까지 쥐어줬다. A씨는 "특수대학원생의 논문을 지도교수 지시로 대필했다는 대학원생들의 얘기를 종종 들었지만, 내가 그 당사자가 될 줄은 몰랐다"며 "황당한 요구였지만 지도교수의 말을 어겼다간 학위를 따는 데 불이익을 당할까 봐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경영대학원, 정책대학원 등 특수대학원을 중심으로 이런 연구부정이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되는 것은 대학들이 오래 전부터 이들 대학원을 돈벌이 창구로만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한 경영대학원 교수는 "특수대학원은 학과 수익사업의 하나일 뿐"이라고 말했다.
학생 유치에 골몰하다 보니 논문 심사 과정은 허술하고 위의 사례처럼 교수가 나서서 대필자를 소개하는 일까지 나온다. 지주형 학술단체협의회 학술위원장(서강대 교수)은 "특수대학원의 경우 일을 하면서 대학원을 다니는 학생이 대부분이라 수업 준비도 제대로 못하는 현실이어서 일반대학원생에게 논문을 대필해 주면 사례를 하겠다는 제안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표절은 더욱 잦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학위가 목적이 아닌 인적 네트워크 형성을 목적으로 하는 단기과정인 경우 연구윤리가 문제 될 일이 별로 없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특수대학원이라 하더라도 논문을 쓰고 학위를 받는 과정이라면 원칙을 지켜야 하는데도 교수들의 인식은 거리가 멀다. 한 정책대학원 교수는 "어차피 학계에 몸 담을 사람도 아닌데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필요가 있겠냐"고 되물었다.
다른 경영대학원 교수는 "과정을 너무 어렵게 하면 손님이 떨어져 나가고 또 쉽게 하면 '개나 소나 다 한다'는 소문이 나 손님이 준다. 장사를 위해서는 적당히 타협한 과정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며 운영의 묘가 필요할 뿐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몇몇 대학 관계자들이 특수대학원도 제대로 된 교육을 시킨다는 의미에서 '정규대학원'이라고 표현하는 사실은 거꾸로 많은 특수대학원을 정규 교육으로 보기 어렵다는 현실을 드러낸다.
이동현기자 nani@hk.co.kr
김혜영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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