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만 없어도 견디기가 어렵지만 늘 우리 곁에 있기에 아무도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공기나 물일 것이다. 전기 또한 많은 사람들이 아무리 사용해도 부족함 없이 쓸 수 있을 것으로만 알고 지내왔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전기가 모자라서 공급을 하지 못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기에 그간 전기를 고마워하는 마음이나 아끼려고 하는 노력은 점점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쓰다가는 전력공급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경계하는 전문가들의 목소리는 점점 더 외면당하게 됐다. 그러다가 겪게 된 것이 작년 가을의 단전 사태였는데, 이를 통해 많은 국민들이 충격과 불안감을 느끼게 됐다. 예기치 못한 단전으로 국가적으로 큰 피해를 겪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한 가지 다행스러운 일이 있다면 이제야 비로소 무엇이 문제인가를 함께 고민하게 만드는 계기가 만들어 졌다는 것이다.
지난해 단전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은 전력의 공급이 늘어나는 수요를 따라잡지 못했다는 데 있다. 지난 수십 년간 끊임없이 경제성장을 해온 우리나라이기에 해마다 전기의 소비량이 늘어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고 이를 잘 예측해 필요한 만큼의 발전설비를 더 갖추어 가야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지난 10년 동안의 통계를 본다면 해마다 우리나라의 연평균 전체 에너지 소비량이 약 2.7% 정도씩 늘어난 반면 전기의 소비량은 그 두 배인 5.3% 정도씩 늘어 왔다. 그러다 보니 벌써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의 국민 한 사람당 전기 사용량은 우리보다 국민 소득이 두 배 정도인 일본, 독일, 프랑스나 영국 같은 나라보다 더 많아지게 됐고, 1달러어치 상품을 생산하는 데 사용되는 전기의 양이 일본의 세 배 가까이 된다고 한다. 아무리 곱씹어 생각을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전기 사용량은 비상식적인 성장을 해왔다고 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여기에다 발전소를 새로 짓는 일은 막대한 건설비용과 시간이 소요될 뿐 아니라 환경 파괴를 바라지 않는 국민들의 반대에 직면해 있어서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형편을 고려해 볼 때 지난해 단전사태는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정부에서도 지난해 사태를 거울삼아 위해 21일엔 정전에 대비한 위기대응 훈련도 한다고 한다. 이런 훈련 기회에 국민 모두가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정전 상황시의 위기 대응 능력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
단전 사태를 통해 전기 사용량이 주체 못할 만큼 늘어나게 된 원인을 찾아내야 하는 데, 그 중요한 이유가 다른 에너지에 비해서 과도하게 인상을 억제해 온 전기요금에 있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특히 산업용 전기요금은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며 일본에 비한다면 거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이러한 낮은 전기요금 체계는 우리나라의 산업 구조를 전기를 과소비하도록 하는 구조로 만들었고, 겨울철 난방과 같이 가스나 석유를 사용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들마저도 전기를 사용하도록 만들고 말았다. 여기에다 아직도 전기요금이 발전원가에 미치지 못해 한국전력은 전기를 팔수록 적자가 늘어가는 모순에 빠져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제대로 된 설비투자와 유지 보수를 기대하기 어렵게 돼 또 다른 전력대란을 불러올 불안 요소가 자라나고 있는 실정이다. 원가 이하의 전력요금은 결국엔 국민들의 세금 부담을 증가 시키게 될 것이고 우리 기업들의 에너지 경쟁력을 더욱 약하게 만들 것이다.
작년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일본에서는 원자력 발전소가 모두 가동을 중단하게 됐고 이에 따라 일본의 많은 기업들이 우리나라로 공장을 이전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기업들에게는 우리나라의 지진이 없는 안정된 국토만이 아니라, 값싼 전기요금 또한 엄청난 매력으로 느껴질 것이다. 어쩌면 우리 국민의 세금으로 다른 나라 기업의 전기요금을 보조하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곧 벌어질지도 모르겠다. 더 이상 지체하면 더욱 더 해결하기 어려운 지경으로 빠지게 될 것이다.
문승일 서울대 공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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