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생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기는 어려운 일인데 다소 민감하게 느껴질 수 있는 최근의 사안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발언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10대와 20대의 정치적 무관심이 우려스러울 정도로 높은 것이 현실이다 보니 가뭄의 단비처럼 반갑게 느껴지는 글이다. 장차 학생이 이 사회의 건전한 민주적 시민으로 성장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단순히 누군가를 처벌해야 한다는 일면적인 주장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표현의 자유라는 주제로 문제의식을 확장시킨 것도 좋았다.
조현오 전 경찰청장의 발언이 허위이기 때문에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학생의 글은 비록 상식적인 수준에서 접근하긴 했지만 건전한 논증을 보여주고 있다. 논리학에는 입증의 책임(onus probandi·burden of proof)이라는 것이 있는데, 어떤 주장을 하는 사람은 반드시 그것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미확인비행물체(UFO)나 요정이 실재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자신의 주장이 참이라는 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만약 입증에 실패한다면 우리는 그의 주장을 참이라고 믿지 않아도 된다. 반증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조현오 전 청장이 허위 사실로 사자(死者)와 유족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면 법의 처벌을 받는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
그렇지만 보완해야 할 점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이제부터는 학생의 글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필요한 부분을 생각해 보자. 학생의 글은 1,800자 분량의 짧지 않은 글을 쓰면서 글 전체의 배경이 되는 조현오 전 경찰청장의 발언에 대한 설명을 제공하지 않고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서론에 해당하는 부분이 생략되어 있는 것인데, 장문의 글쓰기에서는 조금 아쉬운 부분이다. 모든 사람이 그의 발언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아니며, 알고 있다 하더라도 화제 제시용으로 간략한 내용 정리를 해 주는 것이 좋다. 모든 글쓰기 교재가 하나같이 서론 쓰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또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일반적인 표현의 자유로 주제를 확장하는 부분에서 다소 엄밀하지 못한 논의를 펼친다는 데 있다. 세 번째 단락에서 학생의 글은 "다른 사람에게 해를 주는 것"의 기준을 검토하고 있다. 그것이 모호하다는 것을 지적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그 뒤에 나오는 논의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학생이 제시한 "각 개인의 양심상 허용할 수 있는 범위"라는 말은 더욱 모호하기 때문이다. 각 개인이라는 것은 단지 많은 사람을 지칭하는 불분명한 말이다. 그렇다면 "각 개인의 양심"은 곧 여론을 뜻하는 것일 수밖에 없고 이것은 결국 "사회의 통념"이라는 말과 다를 것이 없다. 그런데 표현의 자유의 범위를 사회 통념에 맡기자는 주장은 얼핏 타당해 보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매우 위험한 것이 될 수도 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내용이라 여기서는 구체적인 언급을 피하겠지만 1929년 슈위머 판결에서의 홉스 미국 대법관의 금언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헌법의 원칙 가운데 다른 어떤 원칙보다도 우리가 반드시 중시해야 하는 원칙은 사상의 자유의 원칙이다. 이는 우리와 의견을 같이 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증오하는 사상을 위한 자유를 뜻한다."
다른 부분들, 가령 법리적 측면에서 지적할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고교생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큰 감점 요인이 될 정도는 아니다. 다만 '안 그래도 서러운', '치졸한 죽음으로 매도'와 같은 표현은 다분히 감정적이라 자제할 필요가 있다. 논술문에서는 이성으로 상대방을 설득해야지 감정을 섞어 진술하게 되면 역효과를 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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