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처음 조현오 전 경찰청장의 '고 노무현 대통령 차명계좌' 발언을 접했을 때, 그냥 생각 없이 한 말인지, 어떤 검은 속내를 가지고 한 말인지 헷갈렸다. 어쨌든 그의 표현의 자유는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떤 사건에 대해 개인의 의견을 제시하거나, 의문 또는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에 의해 당연히 보호받아야 할 권리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설령 그가 말한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고 해도 표현의 자유에 의해 보호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조사를 한 결과 사실이 아닌 것이 밝혀졌으니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예가 훼손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곧 내 생각의 치명적인 오류를 발견했다. 부끄러울 정도로 기본적인 것을 간과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유족들이 받았을 정신적 피해였다. 안 그래도 서러운 그 죽음을 차명계좌를 숨기기 위한 죽음으로 변질시켰을 때 느꼈을 충격과 분노 말이다. 또한 허위임이 밝혀지면 노 전 대통령의 명예가 훼손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잘못된 것이었다. 명예 훼손 여부는 다른 사람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주체가 결정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번 경우에는 노 전 대통령이 서거했으니 그 유족이 결정해야 할 문제였다.
표현의 자유는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명할 수 있는 권리이다. 이는 권력이나 사회의 여론에 의해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여기에는 '다른 사람에게 해를 주지 않는 한'이라는 단서가 붙는다. 자신의 권리로 인해 타인의 권리가 침해되는 경우에는 그 권리가 제한될 수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해를 주든 말든 마음껏 말할 수 있는 자유가 부여되었다고 해 보자. 모두가 자신의 생각을 마음껏 말할 수 있기 때문에 행복해질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타인을 비방함으로써 타인에게 정신적 피해를 줘도 아무런 제재가 가해지지 않는 사회에서 과연 누가 행복할 수 있을까?
그렇지만 '다른 사람에게 해를 주는 것'의 기준은 상당히 모호한 것이 사실이다. 한 가지 사건에 대해서도 표현의 자유를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과 제한할 수 있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선다. 하지만 결국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은 개인의 양심과 사회의 통념에 맡겨야 하는 문제다. 각 개인이 양심상 허용할 수 있는 범위, 사회가 통념상 허용할 수 있는 범위가 곧 표현의 자유의 범위인 것이다. 타인에게 피해를 줬다는 것이 확실해도, 그것이 도덕적 비난의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인지, 사회적 제재의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인지가 또 다른 문제가 된다. 이는 특정한 타인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줬는지가 기준이 된다. 특정한 개인 또는 단체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줬다면 처벌이라는 수단을 통한 사회적 차원의 제재가 필요하다. 단 정부는 그 대상이 될 수 없다. 정부에 대한 비판은 어느 경우에나 허용되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조현오 전 경찰청장의 발언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 것이 분명하며, 이는 도덕적 비난의 수준에서 끝날 문제가 아니다. 조 전 청장은 고인의 죽음을 차명계좌를 숨기기 위한 치졸한 죽음으로 매도하여 노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시켰으며, 유족들에게 심각한 정신적 피해를 줬다. 또한 그가 유족들에게 고소를 취하할 것을 우회적으로 요구한 사실은 그가 악의적 의도를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는 개인적 양심이나 사회적 통념에 비춰볼 때 명백히 타인에게 해를 줬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로 인정될 수 없다. 또한 조 전 청장의 발언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유족들이라는 특정한 대상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줬으므로 처벌을 통해 제재해야 한다.
모든 권리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표현의 자유라는 소중한 권리에 대하여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최소한의 책임은 다해야 그 권리가 더욱 소중하고 의미있게 된다.
안산 동산고 장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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