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성 짙은 서사와 묵직한 주제의식으로 주목 받고 있는 소설가 손홍규(37)씨가 세 번째 단편집 <톰은 톰과 잤다> (문학과지성사 발행)를 냈다. 2008년부터 써온 단편 9편을 묶었다. 톰은>
이번 책은 대학생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이 주종을 이룬다. 대부분 작가 손씨의 대학 시절인 90년대가 시대 배경이고 작가를 지망하는 문학청년이 주인공이다. 얼마간 자전적 소설로 읽힐 수도 있겠지만, 손씨가 90년대 대학생을 이야기 중심에 세운 데에는 스스로의 세계 인식을 담아내려는 고도의 문학적 계산이 깔려 있다.
"우리 시대는 한 정점에 서있다고 생각합니다. 신자유주의 이후 세계의 변화를 전망하는 용어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이 그 반증입니다. 더는 올라갈 수 없고 그렇다고 내려갈 수도 없죠. 그 정점이 시작된 시기가 90년대라고 봐요. 그때를 돌아보는 것이 단순한 회고담, 후일담이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손씨는 수록작 '무한히 겹쳐진 미로'에서 오늘날 정점의 시대를 '미로'에 비유한다. 잊혀진 소설가인 대학교수는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 미로의 한가운데 던져진 존재"(161쪽)라고 규정하며 말한다. "길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애틋하다네. 길을 잃어야 하네. 삶이 미로라면 그건 길을 잃기 위해 만들어진 거지 출구를 찾아 나가라는 의미가 아니네. 나갈 곳은 없다네."(167쪽)
손가락이 절단된 궁핍한 노동자의 자식인 주인공에게 건네는 이 충고에 작가의 제언이 깃들어 있다. 우리, 미아(迷兒)들로서 연대하자는. 외국계 회사에 다니는 엘리트와 공장 간부의 성적 학대에 저항하는 여공의 사랑을, 같은 하숙집 대학생의 눈으로 그린 표제작에도 공감과 연대의 메시지가 엿보인다.
'증오의 기원'은 출신 배경이 상반된 두 대학생의 이야기. 방 보증금을 빼서 아버지 장례를 치르고 오갈 데 없어진 고학생 '나'는 시인 지망생 쁘띠의 방에 의탁한다. 별명(프티부르주아)대로 부잣집 아들인 그는 매번 다른 여자를 데려와 섹스를 하고 제 돈으로 고급 양장 시집을 만들어 돌리는 철부지다. '나'는 그를 깊이 증오하지만 내색하지 못하고, 그런 사정도 모른 채 쁘띠는 "너의 유일한 재산은 증오하지 못하는 능력"(200쪽)이라고 비아냥댄다. 감정마저 불통하는 계급사회의 알레고리가 아닐 수 없다.
주인공들은 문학을 붙들고 미로와 증오의 세계에 맞선다. 수록작들은 자연스럽게 문학의 본질과 역할을 사유하는 예술가소설의 성격을 띤다.
1996년 연세대 사태를 모티프로 한 '마르께스주의자의 사전'의 주인공은 마르케스주의자를 자처하는 순정한 문학 청년이다. 연인을 구출하려는 일념에 캠퍼스에 잠입했다가 경찰 포위에 꼼짝없이 갇힌 그는 문학 수업 삼아 외우고 있던 국어사전을 한 장씩 뜯어먹으며 공포와 굶주림을 견딘다.
회고담 형식의 이 소설에서 그는 작중 화자인 연인에게 은신처로 들려오던 전경들의 야만적 언사를 회상하며 당시의 절망감을 토로한다. "그 학생이 전경의 쇠파이프에 두들겨 맞으며 내지르던 비명 때문이 아니었어. 나는… (전경들의) 그 말들이 모두 사전 속에 있다는 사실을 참기 힘들었던 거야."(102쪽) 문학지상주의자였던 그는 사랑을 계기로 엄혹한 현실에 눈뜨며 진정한 마르케스주의자로 거듭난다. 문학이 말과 세계 모두를 끌어안는 사랑이라는 작가의 문학관이 이 애틋한 연애소설을 통해 형상화된다.
손씨는 "소설가가 문학을 깊이 들여다보고 그것을 재구성하는 것은 곧 사회를 재구성하려는 노력과 다름 아니다"라며 "소설가의 지위가 예술가에서 상품 제작자로 추락한 시대에 소설가를 예술가로서 재신비화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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