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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지령 2만호 특집/ "큰문이 되었다, 정치·사회·문화 리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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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지령 2만호 특집/ "큰문이 되었다, 정치·사회·문화 리더로"

입력
2012.06.17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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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를 흔히 기자사관학교로 부른다. 한국 언론사상 처음 견습(수습)기자 제도를 도입하는 등 유능한 인재를 적극적으로 영입했기 때문이다. 창간 첫 해인 1954년 1기 견습기자를 뽑은 이후 지령 2만호를 발행한 현재 70기까지 견습기자를 선발했다. 견습기자 외에도 자신의 능력을 한국일보에서 한껏 드러낸 인재가 많다. 그들 중 상당수는 정치ㆍ사회ㆍ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 진출해 두각을 나타냈다.

언론계 선구자들의 집합소

국내 언론계에서 한국일보 출신의 위상은 독보적이다. 뛰어난 언론인이자 사학자로 평가받는 천관우(1925~1991)씨는 한국일보 논설위원을 거쳐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편집국장을 지냈다. 유신독재 시절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던 그는 재야시절 <언관사관> <한국사의 재발견> 등을 저술하며 한국출판문화상과 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

한국일보에서 문화부장과 주필을 역임한 예용해(1925~1995)씨는 문화계에 큰 족적을 남겼다. 그는 '인간문화재(무형문화재)'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며 전국의 인간문화재를 신문에 소개하고 전통 예능의 발굴·전승을 제도화하는 데 앞장섰다. 문화재청이 올해 문화재위원회 발족 50주년을 기념, 15명의 원로 위원에게 증정한 감사패 명단에도 그의 이름이 포함돼 있다.

김창열(1934~2006)씨는 58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사장과 논설위원을 역임한 뒤 신문윤리위원회 이사와 방송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내며 한평생 국내 언론 발전에 기여했다.

파리 특파원과 편집국장, 주필을 역임한 김성우(78)씨는 '한국의 명문장'으로 통한다. 그는 한국시인협회와 한국현대시인협회가 동시에 추대한 국내 첫 명예시인이다. 그가 99년 쓴 자전적 수필집 <돌아가는 배> 는 월간조선이 선정한 한국 100대 명문에 선정됐다. 2009년 10월 그의 고향인 경남 통영시 욕지도에는 '돌아가는 배' 문장비가 세워졌다.

57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편집국장과 계열사인 서울경제신문 사장을 지낸 권혁승(79) 상임고문은 73년 제5차 남북적십자회담 신문통신방송공동취재단장으로 평양을 방문했다. 간행물윤리위원장과 한국신문편집인협회 감사 등을 역임한 그는 국내 언론계에 남긴 발자취를 인정받아 84년 국민훈장목련장을 받았다. 지금은 서예가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관훈클럽 총무를 지낸 안병찬(74)씨는 시사저널 주필 등을 거쳐 2008년부터 언론인권센터 이사장으로 재직하다 지난해 11월부터 베트남 호치민시 교민신문의 상임고문으로 활동 중이다. 그는 한국일보 사이공(현 호치민) 특파원으로 75년 4월 30일 베트남전 종전 일까지 현장을 지켜본 뒤 피난선을 타고 극적으로 탈출한 국내 유일의 기자였다. 그가 당시 상황을 글로 남긴 '사이공 최후의 새벽'은 현재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베트남전쟁 연구관의 참고자료로 활용되고 있을 만큼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한국일보에서 국내 종합일간지 첫 여성 주필과 사장을 역임한 장명수(70)씨는 국내 대표 여성 언론인이다. 문화부 차장이던 80년대 초반부터 98년 주필이 되기 전까지 연재한 '장명수 칼럼'은 많은 독자의 공감을 샀다. 관훈언론인상, 최은희여기자상, 삼성언론인상 등을 휩쓴 그는 2003년부터 지난해 이화학당 이사장으로 자리를 옮기기 전까지 '장명수 칼럼'을 다시 연재하기도 했다.

소비자 운동의 대모로 불리는 정광모(83)씨는 여기자로는 처음으로 청와대를 출입한 한국일보 기자였다. 그는 70년대 초 소비자 보호운동을 시작해 한국소비자연맹 회장과 서울YMCA 회장을 맡으며 40년 소비자 운동에서 큰 업적을 쌓았다. 한국일보 독일 특파원을 역임한 최정호(79) 전 울산대 석좌교수는 한독 관계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독일 십자공로훈장을 받았으며 현재 한독포럼 의장을 맡고 있다.

한국 정치사를 이끈 사람들

조세형(1931~2009) 전 민주당 상임고문은 한국일보가 낳은 대표 정치인 중 한 사람이다. 편집국장과 관훈클럽 초대 총무를 역임한 그는 79년 당시 제1야당인 신민당 후보로 서울 성북구에 출마해 전국 최다 득표를 기록하며 10대 국회의원에 당선돼 정계에 입문했다. 합리적 개혁주의자로 평가받는 그는 13~15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국민회의 총재 권한대행과 민주당 특대위원장을 맡았다. 주일대사로 참여정부 시절까지 활동한 그는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한국 정치계의 대표 인물로 활동했다.

64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편집국장을 역임한 오인환(73) 전 공보처 장관은 문민정부에서 가장 오래 장관직을 수행한 인물이다. 92년 민주당 총재 정치특보로 정계에 뛰어든 그는 김영삼 정부가 출범한 1993년 2월 26일부터 김대중 정부 초기인 1998년 3월 2일까지 5년 5일 동안 '대통령의 입' 역할을 했다. 2010년 국감자료인 '김영삼 정부 이후 차관급 이상 공직자 현황'에 따르면 김영삼 정부 이후 국내 차관급 이상 정무직공무원의 재직 기간은 평균 1년 3개월인데 이 점을 감안하면 오 전 장관의 재임기간은 전무후무한 기록으로 남을 만하다. <조선왕조에서 배우는 위기관리의 리더십> <고종시대의 리더십> 등을 저술한 그는 요즘 <이승만 평전> 을 집필 중이다.

58년 한국일보에 입사한 심명보(1935~1994)씨는 79년 편집국장을 끝으로 언론계를 떠난 뒤 80년 민주정의당 창당 발기인으로 참여하며 정치와 연을 맺었다. 81년 민정당 공천으로 강원 영월ㆍ평창ㆍ정선에서 11대 의원에 당선된 뒤 14대까지 4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민정당 총재 비서실장과 사무총장도 역임했다.

한국일보 편집국장과 논설위원을 역임한 이원홍(73)씨는 74년 주일본 공사로 발탁된 후 대통령 민원수석비서관을 거쳐 85년부터 2년간 문공부 장관으로 봉직했다. 워싱턴 특파원과 정치부장을 지낸 고 김성진(1931~2009)씨는 박정희 정권 시절 청와대 대변인과 문공부 장관을 지냈다.

한국기자협회장과 보건사회부 공보관을 지낸 안택수(67) 전 한나라당 의원은 95년 자민련 홍보분과위원장으로 정치에 입문해 15~17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2008년부터는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16대 국회의원을 지낸 박병윤(69)씨는 65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경제통으로 이름을 날리며 사장과 부회장까지 올랐던 인물이다. 박현태(77ㆍ11대), 박실(71ㆍ12~14대) 전 의원도 한국일보에서 언론계 첫 발을 디뎠다. 경제부장과 논설위원을 역임한 이병완(56)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비롯해 논설위원을 역임한 이백만(54) 전 홍보수석, 사회부장을 지낸 윤승용(53) 전 홍보수석은 참여정부에서 활약한 인물들이다.

문단에서도 두각

한국일보는 창간부터 현재까지 시대별로 내로라하는 문장가들을 배출하며 '문학 한국'이라는 명성을 지켜오고 있다.

창간 이듬해 입사한 신석초(1909~1975) 시인은 57년부터 문화부장과 논설위원 등을 역임하며 17년간 한국일보 문화면을 이끌었다. 고전미의 시적 형상화에 관심을 기울인 그는 '호접' '고풍' '비취단장' '파초' 등 전통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를 남기며 한국 근대문학을 꽃피웠다.

63년부터 80년까지 한국일보에 몸담았던 수필가 조경희(1918~2005)씨는 한국수필가협회를 창립해 작고할 때까지 회장을 맡았다. 그는 여성 문화인 최초로 예술문화총연합회(예총) 회장을 지냈으며 한국여성개발원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66년부터 다섯 차례나 한국방송작가협회 이사장을 지낸 한운사(1923~2009)씨도 한국일보 문화부장 출신이다. '현해탄은 알고 있다''아낌없이 주련다' 등의 드라마를 집필했으며 새마을운동 주제가인 '잘살아보세'를 비롯해 대중가요 '빨간 마후라''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등을 작사했다.

참여적 서정시인으로 불리는 이성부(1942~2012)씨도 한국일보 출신이다. 그는 계간 '창작과비평' '68문학' 동인으로 참여했고 대표 연작시 '전라도'를 발표하며 암울한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하는 시 세계를 확립했다.

<칼의 노래> <남한산성> <공무도하> 등 베스트셀러를 집필하며 2000년대 최고의 작가로 평가받는 소설가 김훈(63)씨는 74년 한국일보에 입사했다. 86~89년 당시 문화부에 함께 있던 박래부(전 한국언론재단 이사장) 기자와 함께 연재한 '문학기행'은 해박한 문학지식과 유려한 문체로 구성된 빼어난 여행 산문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당시 최고 인기 기획물로 자리했다.

이태무기자 abcdef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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