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창창한 나이 아니냐. 마음껏 꿈꾸고, 그 꿈을 향해 미쳐보자고!"
15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익대 정문 앞에 마련된 간이 연극무대. 교복을 입고 중학교 3학년으로 되돌아간 김연숙(61)씨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대사를 외치자 관객 500여 명이 함성과 박수를 쏟아냈다. 조금 전 연습 때만 해도 '발음 정확하게 해야 하는데…'라고 걱정했던 모습은 온데 간데 없었다. 관객들은 마치 자신의 꿈 많던 학창시절이 생각났는지 눈을 감고 회상에 젖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비정규직 철폐'라는 똑 같은 빨간 조끼를 입고 있었다.
이 날 연극의 주인공과 관객 대부분은 다름아닌 대학교 내 청소ㆍ경비 노동자들. 특히 김씨를 비롯해 경희대에서 청소일 하는 박선옥(50) 이옥경(53)씨와 홍익대에서 경비 일을 하는 박진국(59)씨는 태어나 처음 연극 무대에 섰다. 이들은 이날 열린 '제3회 청소노동자 행진'의 부대 행사로 마련한 연극 '포기할 수 없는 꿈'을 공연했다. 대학로의 무대는 아니지만, 이들에게는 잠시 고된 현실을 잊고, 학창 시절의 '꿈'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를 지녔다.
이들은 '유령'처럼 무시당하는 자신들의 처지를 알리고 싶어 이번 연극에 참여했다. 연극 내용은 대학 청소노동자들이 쉬는 시간 휴게실에서 학창시절을 회상하며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는 것.
대본은 10분 정도 분량으로 일반 연극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짧지만, 생전 처음 연극에 도전하는 이들에겐 큰 부담이었다. 이들은 지난 주부터 대본 용지를 손바닥 크기로 접어 들고 다니며 자투리 시간에 외웠고, 퇴근 후에 서로 대사를 맞췄다. 출연진 7명 전부 모여 호흡을 맞춘 건 이날 리허설을 포함해 단 두 번뿐이었다. 근무지가 다른 박씨는 퇴근 후 아내가 상대역을 맡아 대사를 맞췄다.
누가 봐도 표정연기나 행동이 부자연스러웠지만 성취감은 대단했다. 박씨는 "우리는 일터에서 힘든 일을 해도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임금에 인간적으로 정당하게 대우도 못 받고, 눈치 보면서 쉬어야 하는 존재"라면서 "그러나 오늘 이 무대에서만큼은 주연으로 당당히 무대에 섰다"고 말했다.
청소노동자 행진은 고용불안, 저임금 등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하는 청소노동자들이 노동자로서 권리를 요구하는 행사로 2010년부터 매년 열리고 있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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