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스러운 탐정들/로베르토 볼라뇨 지음·우석균 옮김
/열린책들 발행(전2권)·480, 528쪽·각 권 1만3,800원
칠레 출신 작가 로베르토 볼라뇨(1953~2003ㆍ사진)는 멕시코에 살면서 시를 쓰던 20대 전반기에 시인 친구 마리오 산티아고와 함께 전위적 문학 운동을 펼쳤다. '인프라레알리스모(밑바닥 현실주의)'라고 이름 붙인 이 운동 그룹에서 볼라뇨는 멕시코 시단의 기득권층을 비판하고 거리의 삶과 일상 언어에 눈을 돌리자고 주장했다. 반항적이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던 이 젊은 날을 모티프로 볼라뇨는 1998년 장편 <야만스러운 탐정들> 을 발표, 일약 라틴아메리카 대표 소설가의 반열에 오른다. 야만스러운>
한국어판으로 1,000쪽에 달하는 이 방대한 소설은 두 젊은 시인 아르투로 벨라노와 울리세스 리마가 주인공이다. 각각 볼라뇨와 친구 산티아고의 분신이다. 둘은 '내장(內腸) 사실주의'라는 전위 문학 그룹의 주도자인데, 이 해괴한 이름의 그룹이 볼라뇨가 20대 시절 몸담았던 전위시 운동 그룹의 소설적 대체물임은 물론이다.
소설은 3부로 구성돼 있다. 1부와 3부는 두 주인공을 추종하는 17세 작가 지망생 가르시아 마데로가 1975년과 이듬해 초에 각각 쓴 일기로 이야기상 연결된다. 작품의 몸통이라 할 수 있는 2부는 마데로의 일기가 끝날 무렵부터 1996년까지 장장 30년에 걸친 주인공들의 사연이다. 연대순으로 보자면 1부, 3부, 2부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셈이다.
멕시코시티 소재 대학에 갓 들어온 마데로는 시 창작 교실에서 내장 사실주의의 리더 벨라노와 울리세스를 만난다. 기성 문단의 관습을 신랄하게 비웃는 이들은 1920년대 여성 시인 세사레아 티나헤로를 내장 사실주의의 선구자로 보고 그녀의 행적을 찾고 있다. 세 친구는 우연히 어린 매춘부 루페와 그녀의 기둥서방 사이의 갈등에 얽히게 되고, 기둥서방에게서 도망치려는 루페까지 네 사람은 북부 사막지역인 소노라로 떠난다. 그들은 그곳에서 티나헤로를 찾아내지만 루페를 잡으러 온 일당들과 맞닥뜨리고 만다. 이 와중에 티나헤로가 비명횡사하고, 벨라노와 리마는 살인을 저지른다.
벨라노는 세상과 인연을 끊고 아프리카로 떠나고, 리마 역시 이스라엘과 오스트리아를 덧없이 떠돈다. 2부는 이들의 30년 방랑을 저마다의 시각에서 전하는 다양한 인물들의 증언으로 구성된다. 증언이 켜켜이 쌓이면서 두 사람의 인생이 구체화되고 그들의 꿈과 좌절이 무엇이었는지도 선명해진다. 번역자 우석균씨는 "20세기 라틴아메리카의 세기말 풍경을 재현한 이 소설에는 좌우 대립과 야만적 폭력에 고통받았던 자기 세대(1950년대생) 작가들의 운명에 대한 볼라뇨의 비극적 인식이 담겨 있다"고 해설했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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