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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입원·수술 후 정신혼란·이상행동… 혹시 치매? 섬망 증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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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입원·수술 후 정신혼란·이상행동… 혹시 치매? 섬망 증세!

입력
2012.06.14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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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 넷 할머니가 집에서 넘어져 고관절(엉덩관절)이 부러졌다. 바로 병원으로 실려와 수술에 들어갔다. 다행히 수술이 잘 돼 의식을 회복하고 중환자실을 거쳐 일반 병실로 옮겼다. 그런데 그 이튿날 밤부터 할머니가 이상해졌다. 갑자기 가족을 못 알아보고, 자신이 수술했다는 사실조차 기억을 못했다. 눈앞에 뭔가가 보이는 듯 손을 휘휘 저으며 쫓고, 밤에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수술 후 가슴을 쓸어 내렸던 가족들은 갑작스런 할머니의 이상 행동에 너무나 당황했다. 갑자기 치매가 생긴 것 아니냐는 걱정도 앞섰다.

하지만 치매는 아니다. 이건 '섬망'이다. 종합병원 입원 환자의 10~20%가 겪을 만큼 흔한데도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 최근 국내 의료진이 섬망의 원인을 처음으로 밝혀냈다.

수술 후 3일이 고비

입원이나 수술 환자가 많은 종합병원 치고 섬망 환자 없는 곳이 거의 없다. 내과에선 몸 상태가 좋지 않은 암 환자에게 섬망이 자주 나타난다. 외과에선 수술 후 3일째에 잘 생긴다. 연세대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재진 교수는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특히 뼈가 골절된 노인이 섬망 증상을 많이 보이고, 뼈 중에서도 고관절 골절이면 다른 부위 골절보다 섬망이 잘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평소 섬망에 대해 모르던 보호자들이 환자의 갑작스런 이상 증상을 보면 치매라 생각하기 쉽다. 섬망 환자가 보이는 가장 뚜렷한 증상이 의식이 떨어지면서 혼란상태에 빠지는 것이다. 가까운 사람을 처음 본 사람처럼 대하고, 자신이 있는 장소를 구별하지 못하고, 낮인지 밤인지 어느 계절인지 시간을 헷갈려 한다. 답답해 하면서 주사바늘이나 소변줄 등을 뽑아버리고 안정하지 못한 채 계속 움직인다. 언뜻 보면 딱 치매 같다.

섬망과 치매의 가장 큰 차이는 발생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치매는 아무리 빨리 와도 증상이 단계적으로 나타난다. 반면 섬망은 하루아침에 갑작스럽게 생긴다. 지속 양상도 구별된다. 치매는 증상이 꾸준히 이어지지만, 섬망은 하루 중에도 증상이 생겼다 없어졌다 한다. 대개는 밤에 좀더 심해진다. 또 섬망은 보통 1주일 넘게 지속되지 않는다.

때문에 섬망은 증상 자체보다는 환자가 원래 받아야 할 치료에 지장을 준다는 점이 더 문제다. 예를 들어 고관절 수술 후엔 자리에서 안정해야 하는데, 섬망이 생겨 계속 답답해하고 돌아다니려 하면 회복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소통 안 되는 뇌

지금까지 섬망은 몸이 쇠약해지면서 뇌를 보호해야 할 생리적 장치들이 무너져 일시적으로 뇌 기능이 혼란에 빠지기 때문에 생긴다고 알려졌다. 이렇게 뇌를 혼란에 빠뜨리는 요인으로는 암 같은 큰 병, 골절 등 신체 부위 손상으로 생긴 독성물질, 수술에 쓰인 마취제 등 다양한 가능성이 제시되었다.

하지만 김 교수팀이 최근 70대 초반의 섬망 환자들과 건강한 사람 각 22명을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 장치로 뇌를 촬영해 비교한 결과, 뇌에서 각종 신호를 전달하는 물질 중 의식에 영향을 미치는 도파민과 기억력에 관여하는 아세틸콜린에 반응하는 신경세포들이 상호작용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렷한 의식과 정상적인 기억력이 유지되려면 이들 신경세포가 서로 원활하게 소통해야 하는데 말이다.

발병 과정이 어느 정도 알려진 치매와 달리 섬망이 생기는 구체적인 메커니즘을 실제 환자의 뇌 영상을 통해 밝힌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연구팀은 밝혔다. 김 교수는 "현재 섬망 환자에게는 일반적인 정신질환 상태를 다스리는 약을 쓴다"며 "이번 연구결과가 섬망 치료제 개발의 토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못 알아봐도 대화를

사실 섬망은 입원이나 수술 환자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누구에게나 나타날 수 있다. 대부분 고령층에 생기다 보니 너무 쉽게 치매로 속단해 실의에 빠져 적극적인 치료를 피하기도 한다. 그러나 뇌세포가 파괴돼 회복이 어려운 치매와 달리 섬망은 일시적이기 때문에 대부분 완전히 회복될 수 있다.

김 교수는 "섬망이 생기면 환자가 설사 못 알아보더라도 가까운 사람이 계속 곁에서 말을 걸면서 정확한 사실을 알려주고, 텔레비전 같은 자극을 계속 주면서 환자가 공포를 느끼지 않도록 조명도 분위기도 밝게 해주는 게 좋다"고 말했다.

임소형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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