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명의 연예인이 목숨을 끊었다. 생활고니 아니니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산 자들의 추측 속에 이제 와 끌끌 혀를 차면 무엇 하리. 이른바 한류의 중심이라는 유명 아이돌의 멤버조차 이름과 얼굴을 헷갈려 하는 내가 대다수 어른들의 표본일 텐데, 하물며 스쳐 지나가는 게 배역의 전부인 모든 단역배우들에게 문어발식 박수는 현실적으로 불가한 일이 아닌가.
죽었다고 하니 얼굴 한 번 더 보게 되고 이름 한 번 더 부르게 되는 것이 현실임을 알았다. 연예뉴스라는 것이 참 모질기도 하여 명복을 빌기도 전에 클릭을 유도하는 연애기사랄지 패션기사랄지 온갖 가십들이 줄을 잇느라 자극적인 슈퍼스타들의 근황 또한 안 볼 수가 없었던 터, 그 자괴감 아래 나는 인간들 사이에서 빚어지는 온갖 불합리함과 불평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OECD 가입국 가운데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안은 채 주위를 살필 겨를도 없이 그저 나만 보고 앞만 보며 달려가기 바쁜 우리들. 기억을 더듬어 지금보다 덜 강했고 지금보다 덜 부유했던 개발도상국 시절만 해도 서로의 목숨이 귀하다는 것만은 충분히 알았던 것 같다.
왜? 1989년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영화에서 7등을 했다고 투신자살을 한 여고생 이미연에 사회 전체가 패닉일 정도였으니까. 왕따라는 말이 우울증이라는 말이 이렇게나 일상이 될 줄 그때는 상상이나 했으려나.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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