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여름철 에너지사용제한조치 단속을 시작한 지난 11일. 합동단속반이 서울 명동과 강남역 등 유동인구가 많은 밀집지역을 대상으로 계도활동을 벌였지만, 여전히 수 많은 의류ㆍ화장품 매장들은 문을 연 채 에어컨을 틀고 있었다. 특히 “다음달부턴 본격단속에 적발되면 최고 3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는 경고에 일부 매장에선 “빨리 나가달라”며 단속반을 밀쳐 내는 등 승강이가 곳곳에서 벌어지기도 했다.
단속에 참여하고 있는 서울 중구청 관계자는 “전기를 아끼자고 얘기했지만 듣는 둥 마는 둥 하더라”며 “(우리가) 매장을 나가자 말자 보란 듯이 다시 문을 열고 에어컨을 틀었다”고 말했다. 이들 매장 대부분은 정부가 권고한 실내온도 26도 이상 유지가 무색할 만큼 낮게는 19도, 높아 봐야 20도 초반으로 희망온도가 설정돼 있었다.
지난 겨울 경북의 한 비닐하우스 농가. 농가주인은 비닐하우스의 전열시설을 기름에서 전기로 바꿨다. 그는 “고유가 때문에 기름값이 만만치 않아 난방장치를 전열기로 교체했다. 기름값보다 전기값이 싸다”면서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양돈장 같은 곳도 그렇게 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전기가 줄줄 새고 있다. 경기도 부진한 데, 게다가 지난해 전국이 암흑직전까지 가는 정전대란을 겪었는데, 전력소비량은 크게 늘고 있다.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전력소비량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1.7배 높고, 1인당 전력소비량 역시 일본의 3배, 미국의 2배에 달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경제활동에 꼭 필요해서 쓰는 전기라면 뭐라 할 수 없지만 실상은 쓸데 없이 소모되는 전기, 줄줄 새는 전기가 더 많다”고 말했다.
전기가 새는 데는 도시와 농촌, 민간과 공공기관에 구별이 없다. 대표적인 곳이 공공청사들이다. 최근 지어진 대부분의 공공청사가 외벽전체를 유리로 시공한 일명 ‘유리건물’들인데, 전문가들은 이런 유리건물이야 말로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추운 ‘전기 먹는 하마’로 평하고 있다.
서울 용산구청, 금천구청, 경기 성남시 신청사 등이 대표적인 케이스. 지난해 국정감사결과, 최근 2~3년간 지어진 신청사 대부분이 유리외벽 건물이었고 특히 2005년 이후 신축됐거나 건설 중인 지자체 청사 21곳 가운데 19개, 공사 중인 7개 청사 중 4개가 에너지효율 4등급 이하 판정을 받기도 했다. 공공청사들은 일반용 전기를 쓰기 때문에 전기료가 민간과 똑같은데, 결국 주민세금부담만 늘게 됐다.
전기가 새는 데는 가정과 사무실의 차이도 없다. 대부분 사무실에서 점심시간 직원들이 모두 자리를 비웠지만 컴퓨터 전원은 켜져 있었고 밝은 조명은 실내를 훤하게 비추고 있다. 매장 에스컬레이터는 사람이 없어도 쉼 없이 오르내림을 반복한다. 그 결과 일반용 전기소비량은 지난 2007년 8,221만㎿이던 것이 2010년 9,741만㎿로 늘었다.
가정의 ‘전기불감증’은 더하다. 전기밥솥은 밥이 눌러 붙을 때까지 보온상태가 유지되고, 컴퓨터는 본체전원은 꺼도 모니터는 켜놓는 경우가 허다하다. 에너지관리공단 관계자는 “플러그는 뽑지 않으면서 전기요금이 왜 이렇게 비싸냐고 하는 건 그야말로 넌센스”라며 “사용하지 않는 가전제품의 플러그만 뽑아도 월 8,000원 가량이 요금이 절약된다”고 말했다.
시골로 내려가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영세농가를 돕는다’는 차원에서 농사용 전기요금은 지난 12년간 동결되어 있다. 그 결과 취지와 달리 대규모 기업농이 혜택을 보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전력에 따르면 부화장을 운영하는 A기업, 양곡생산업체인 B기업, 콩나물을 재배하는 C기업 등 세 곳의 기업은 지난 2010년 한 해에만 15억원의 전기요금 혜택을 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대용량 농사용 전기사용량은 10년 전에 비해 저압의 경우 73%, 고압은 무려 183% 급증했다.
전문가들은 “가정이든 농장이든 사무실이든 화장실 수도가 새면 고쳐도 전기가 새는 것은 왜 고치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입을 모은다. 이런 에너지낭비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결국은 큰 부메랑으로 되돌아올 것이란 지적이다. 박종배 건국대 전기공학과 교수는 “문을 열고 에어컨을 가동하는 것은 하나만 써도 될 전기를 두세 개씩 쓰는 것과 같다”며 “정말로 절전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종한기자 tell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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