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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보금자리

입력
2012.06.13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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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의 신화' '격정시대'등을 남긴 김학철(金學鐵ㆍ1916~2001)은 대표적 재중동포 작가였다. 지금부터 딱 20년 전, 옌볜(延邊)으로 그를 찾아가 취재한 일이 있다. 삼나무길인가 하는 동네에 들어섰을 때 버드나무에서 아주 특이한 팻말을 보았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여기는 소설가 김학철 선생이 사는(글을 쓰는?) 곳이니 조용히 하시오."라는 내용이었다. 당시 중국과 옌볜의 문화적 수준을 얕잡아 보고 있던 터여서 적잖이 놀랐던 기억이 난다.

■ 일제 때 항일 독립투쟁을 하다 태항산 전투에서 총상을 입어 한 쪽 다리를 절단했던 그는 문화대혁명을 비판했다가 반동분자로 끌려가 10년간 옥고를 치렀다. 죽음이 임박하자 스스로 곡기를 끊고 "내가 죽거든 화장해서 가루를 두만강에 뿌려달라"고 했다. 꿈에도 그리던 고향 원산으로 흘러가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그런 분이니 주민들과 행정당국의 존경은 당연한 일이었다. 사회적 분위기와 토양이 판이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팻말을 세울 수 있을까?

■ 그런 팻말까지는 아니더라도 예술가들의 자취를 살리는 일은 아주 활발하다. 서울 강동구는 '꽃'의 시인 김춘수(1922~2004)가 살던 명일동 우성아파트 일대에 '김춘수 길'을 만들고 기념판도 세우기로 했다. 김춘수는 이곳에서 15년간 살면서 '명일동 천사의 시' 등 명일동 풍경을 담은 작품을 여러 편 썼다. 손녀 김유미씨는 라는 책에서 "할아버지는 이 세상에 없는데 여기는 어쩌면 이렇게도 달라진 게 없느냐"고 쓰기도 했다.

■ 수원시는 광교산 자락에 고은 시인의 집을 마련키로 했다. 고씨가 먼저 제의를 한 것처럼 발표했지만, 사실은 몇몇 지자체가 경쟁적으로 '고은 유치운동'을 벌였다고 한다. 그가 노벨상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계산이었을 것이다. 수원시는 5월에 '문화예술도시 수원' 비전을 발표하면서 '고은 문학관'을 세우겠다고 해 그가 살고 있는 안성 사람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예술가들에게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은 좋지만, 돈이 되는 관광자원으로만 생각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임철순 논설고문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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