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쿵쿵쿵.'
12일 오후 9시 서울 송파구의 한 빌딩 지하 연습실. 재래 시장 한 귀퉁이에 자리 잡은 이 곳에서는 늦은 시각까지 드럼, 기타 등 록밴드 연습이 한창이었다. 지난해 9월 4명의 남성 멤버들이 의기투합해 결성한 인디밴드 '빅시프트(BIQ SHIFT)'다. 거창한 이름과 달리 29.7㎡(9평) 남짓한 연습실에 들어서자 눈에 들어온 것은 당황스럽게도 멤버들의 '발가락'이었다. 구성원들은 맨발에 후줄근한 티셔츠 차림으로 연습에만 푹 빠져있다. 악기라고는 드럼과 기타가 전부고, 음악을 만들기 위한 컴퓨터가 박자를 맞추며 거들고 있을 뿐이었다.
맨발의 록밴드 연습을 보고 있자니 돌아 온 말은 "우리 첫 공연이에요"였다. 아직 손님을 초대 해 본 적 없는 터라, "손이 오그라들 정도로 어색하다"는 말을 연방 내뱉으며 얼굴을 붉혔다.
좌충우돌하는 것이 영락 없는 10대들 같다. 하지만 이들의 이력을 알고 나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맏형으로 보컬과 기타를 맡고 있는 양지만(34ㆍ사법연수원 38기)씨는 지난해 초 까지만 해도 울산지법 판사였다.
어렸을 적부터 팝송부터 대중음악까지 가리지 않고 듣는 것을 좋아했던 양씨는 대학에 들어가서 뜻이 맞는 친구들과 밴드를 만들었지만, '일단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대안은 만들어 놓자'는 생각에 음악을 접고 사법고시에 집중, 2005년 합격했다. 그러나 결국 법복을 벗었다. "주변에선 미쳤다고 했지만 매일 자정까지 사건 기록을 보고 재판하는 삶이 음악을 하고 싶었던 제게는 곤욕이었어요. 부모님을 끈질기게 설득했죠."
양씨는 일반 인구의 상위 2%의 지적 능력을 가입 조건으로 하는 국제천재단체 '멘사'의 회원이기도 하다.
기타를 담당하는 이준상(30ㆍ성형외과 전공의)씨는 현재 안양 한림대 성심병원 3년 차 수련의다. 그런 그도 자신의 본업은 '밴드'라고 당당하게 밝힌다. 이씨는 "공연 요청도 많이 들어오고, 곡들이 유명해지면 의사를 그만두고 밴드만 하고 싶다"고 말할 정도다. 아직까지는 밴드 활동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입이 전무하다 보니 오히려 의사로 벌어들인 수입 대부분을 앨범을 만드는데 쓰고 있지만 그래도 즐겁단다.
전문 음악인의 꿈을 키워온 또 다른 멤버 하대석(32ㆍ드럼 담당)씨와 손명훈(27ㆍ베이스 담당)씨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사회적 지위를 포기하고 음악의 길로 뛰어든 양씨, 이씨의 도전이 놀라우면서도 반가웠다고 첫 만남을 회상했다. 음악을 위해 지금껏 걸어온 길은 다른 이들 4명에게 빅시프트는 공통의 희망이다. 4월에는 첫 디지털 싱글 앨범인 '도마 위의 생선'을 내놓았다. 욕심 많은 물고기가 먹이를 탐내다 낚시 밑밥까지 물어 도마 위에 오르게 된다는 내용이다. 그는 "소개팅 때 변호사라고 하면 좋아하다가 '가난한 밴드'가 본업이라고 고백하면 다들 연락이 끊긴다"며 "현대사회가 꿈보다 물질만능주의에 매몰되는 것 같아 소박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만들었다"고 웃는다.
이들 빅시프트는 모든 인디밴드의 꿈인 홍대 거리 클럽에서 공연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양씨는 "무명인 탓에 공연 기회를 잡는 게 쉽지 않지만 계속 도전할 것"이라며 "꿈을 좇는 것이 허세나 무모함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채희선기자 hsch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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