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덕역 실종여성 사건'의 피해자 A(19)씨는 가출 이유를 묻는 여경의 질문에 눈을 질끈 감고 한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10일 오전 A씨의 소재를 확인한 실종 사건 담당 형사와의 통화에서 "부모님의 간섭을 받기 싫어서 집을 나왔다"고 했던 A씨였다. 그래서 처음에는 '가정불화에 따른 단순 가출'로 보였다. 그러나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서울 용산경찰서가 11일 오후 여경에게 면담조사를 맡겼을 때 A씨의 자세는 크게 달랐다. 떨리는 목소리로 털어놓은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경찰에 따르면 A씨의 끔찍했던 악몽은 중학교 시절부터 시작됐다. 아빠와 엄마가 가정불화로 서로 떨어져 살자 엄마는 남자친구라며 김모(36)씨를 데리고 왔다. 당시 20대 후반이었던 김씨는 작은 키에 무서운 인상이었지만 A씨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 때부터 김씨의 가혹행위는 시작됐다. A씨는 2~3일에 한 번 꼴로 가혹행위에 시달렸다. 감당할 수 없는 충격이었지만 어린 나이였던 지라 자신의 고통을 남에게 한 번도 알리지 못했다. 친구는 물론 엄마에게도 알릴 수 없었다고 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겠거니 하고 그렇게 7년이라는 세월을 악몽 속에서 보냈다.
용산경찰서는 A씨의 진술 내용을 토대로 11일 김씨를 긴급체포 했다. 경찰은 김씨로부터 철면피 한 행각에 대한 자백을 받아냈고 12일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또 김씨는 지난 5일 A씨가 갑자기 집을 나가 종적을 감추자 경찰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해 A씨를 찾아 나섰던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A가 가출하자 곁에 붙잡아 두려고 경찰에 신고하고 인터넷에도 글을 올렸다"고 자백했다. 앞서 김씨는 자신의 범행이 밝혀질까 두려워 사라진 A씨를 찾기 위해 지난 9일 '실종된 딸을 찾습니다. 경찰에서는 단순 가출로 보고 기다리라고만 합니다'는 내용의 글과 함께 A씨 인적사항, 사진까지 인터넷에 공개했다. A씨는 자신이 당한 피해사실을 털어놓은 뒤 경찰을 통해 인터넷과 SNS에 퍼진 김씨의 글과 자신의 인적사항, 사진을 삭제해줄 것을 요청했다.
앞서 5일 실종신고를 받은 용산경찰서는 A씨를 찾아달라고 요청한 김씨의 설명을 토대로 CCTV와 탐문 수사를 벌여 납치ㆍ실종보다는 단순 가출로 판단했다. 이에 A씨 가족관계를 토대로 수소문한 결과 10일 A씨가 경기도 안산의 친할머니 집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나 경찰은 A씨가 당초 밝힌 가출 사유에 석연치 않은 점을 발견하고, 설득한 끝에 피해사실에 대한 진술을 받아냈다. 김씨가 7년간 벌인 가혹행위와 A씨를 찾기 위한 SNS 악용 행각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김현빈기자 hb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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