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김민정의 길 위의 이야기] 잘났어, 정말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김민정의 길 위의 이야기] 잘났어, 정말

입력
2012.06.12 12:11
0 0

오래 혼자 살다보니 누군가와 어떤 일상을 함께하는 데 점점 불편함을 느낀다. 엄마와 여동생들과 일요일마다 손잡고 때 밀러 가던 목욕탕 나들이도 작정이자 이벤트가 된 지 오래이니 말이다. 그뿐이랴. 간혹 여고 동창이 놀러 와 밥을 해준답시고 부엌에서 내 살림살이를 들쑤실 때면 바로 등 뒤에 붙어 별별 간섭에 바쁜 게 나이니.

그렇게 혼자 먹고 혼자 자는 데 익숙해지니 낯선 이의 방문에 신경이 바짝 곤두설 수밖에 없는 게 사실이다. 오죽하면 도시가스 점검하러 집에 들르겠다는 검침원 아줌마로부터 쌍욕을 다 들었겠는가. 점검이 확인되지 않으면 가스를 끊겠다는 엄포에 아침 8시 방문 예약에 오케이를 해버린 게 화근이었다.

까맣고 잊고 잠에 빠진 나, 쉴 새 없이 울려대는 초인종에 전화벨에 그러거나 말거나 이불 뒤집어쓴 채 그저 가시기만 바랐거늘, 이어지는 현관문 차는 소리에 벌떡 침대에서 일어났다. 25분이나 지났건만 나를 깨우려는 의지 때문인지, 허탕친 제 발길이 억울해서인지 도통 멈추지 않는 아줌마의 화라니.

고요해진 후 대문에 다닥다닥 붙은 아줌마의 메모를 읽었다. 저와의 약속을 잊으셨나요? 전화벨이 안에서 울리던데 일부러 받지 않으시는 건가요? 연락주세요. 빨간 사인펜으로 감정을 꾹꾹 눌러 쓴 포스트잇을 떼며 나는 내가 참 나쁜 여자라 생각했다. 독신녀의 화려한 삶이라고? 개뿔, 그러다 죄나 받지!

김민정 시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