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을 경계로 한 분단과 대치 경험을 공유한 독일의 사회민주당(SPD)은 우리 민주통합당과 닮은 중도좌파 정당이다. 사민당은 1875년 노동자동맹과 마르크스주의 정당이 연대해 출발한 노동계층 기반의 전투적 이념 정당이었다. 그 때문에 비스마르크 시대와 나치 치하에서는 불법으로 규정됐다.
전후 부활한 사민당은 총선에서 중도우파에 거듭 패했다. 그리고 1959년 라인강변 바트 고데스버그의 전당대회에서 마르크스주의와 사회주의 혁명 목표를 폐기하는 일대 변신을 단행한다. 중산층과 전문직 지지기반을 넓혀 국민 정당으로 거듭난 실용 전략이었다.
이 역사적 변화에 앞장 선 인물이 분단과 대치의 최전선 서베를린 시장 빌리 브란트였다. 그는 "세상 현실을 새롭게 발견한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인식이 발전한 것을 세상에 알렸다"고 말했다. 이 바트 고데스버그 선언으로 사민당은 이념과 계층의 완고한 참호를 벗어났다. 뒷날 총리에 오른 브란트는 냉전의 벽을 넘어 통일의 기초를 다졌다.
낡은 역사를 얘기한 것은 지루한 종북(從北) 논쟁 때문이다. 통합진보당 옛 당권파의 숨은 실세 이석기 김재연, 두 비례대표 당선자가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종북 주사파라는 규정이 중심이다. 애초 비례대표 경선부정 파문이 국회의원 자격 시비, 이념 논란으로 번졌다. 진보당 새 당권파와 새누리당이 의원직 사퇴와 제명을 주장하자 민주통합당이'신 매카시즘'이라고 가로막고 나서 싸움이 커졌다.
진보당의 표상과 같은 풀뿌리 민주주의를 유린한 부정 경선은 원천 무효다. 다른 비례대표 후보들이 자진 사퇴한 것도 그래서다. 비례대표는 국민대표성보다 정당대표성이 강하다. 당이 대표성을 부인한 비례대표 당선자가 유권자의 선택을 내세워 버티는 것은 명분이 허약하다. 다만 국회의원 배지를 떼 낼 마땅한 방도가 없는 게 딜레마이다.
새누리당이 거론한 의원 자격심사는 피선거 자격을 확인하는 행위일 뿐이어서 애초 무리다. 징계에 의한 제명도 국회의원 활동 전의 경선 부정을 징계사유로 삼기 어렵다. 결국 이들은 헌법의 신분보장과 민주당의 비호에 기대 국회의원직을 굳게 지킬 공산이 크다. 종북 논쟁도 흐지부지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민주당이 이념 시비에 매카시즘의 부정적 이미지를 덧씌운 것은 언뜻 영리하다. 종북 논쟁이 대선 국면을 지배할 것을 경계하는 시각에서는 더욱 그렇다. 진보당과 연대를 이어가려면 주사파 존재를 흐리는 것을 최선의 방책으로 여길 만하다.
그러나 임수경의 '탈북 변절자 새끼' 망언은 세상 이치가 오묘함을 일깨웠다. 종북 주사파 낙인이 반드시 시대착오적 매카시즘일까, 이런 의문을 국민에게 남겼다. 임수경을 민주당 비례대표로 추천한 임종석은 북한의 민중민주주의 혁명노선을 추종한 주사파 주축의 전대협 의장을 지냈다. 특히 임수경을 밀입북시켜 '통일의 꽃'으로 만들었다. 둘은 제도권 정치에 편입됐으나, 임수경은 여전한 종북 인식을 드러냈다.
임수경을 맹목적 행동주의자라고 눙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석기를 비롯한 주사파 투사들의 면모는 아주 다르다. 전투적 책략에 능숙한 이들이 국회의원으로서 뭘 도모할지, 그게 종북 논쟁의 향방보다 흥미진진할 듯하다. 이들이 국회에서 그저 진보당의 민주사회주의 이념을 위해 복무하지는 않을 것이다. 예컨대 대선 전망이 비관적일 경우, 과거 임수경처럼 파격적 행보로 정치와 사회에 충격을 주지 않을까 싶다. 그 때도 민주당이 매카시즘 논리로 방어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북한의 '우리 식 사회주의'를 받드는 주사파는 민주당이 가까이할 수 없는 무리다. 진정으로 국민 정당을 지향한다면 지금이라도 주사파를 단호히 배척, 제도권 정치에서 고립시키는 길을 고민해야 한다. 그게 멀리 내다보는 정치의 지혜일 것이다.
강병태 논설고문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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