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룰로 하건 완전국민경선으로 하건 이기는 건 마찬가지니 겁먹지 말고 룰 개정에 동의해 줬으면 좋겠다."
때리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말이 여기에 해당될지 모르겠다. '현행 룰로는 해보나마나이니 룰을 고쳐 달라' 는 비박후보들의 노골적인 주장은 그것대로 생각해 볼 일이겠으나, 박근혜를 유불리나 따지는 옹졸한 사람으로 치부하고 어르고 달래는 듯한 이런 식의 논법은 모욕으로 들릴 가능성이 높다. 이런 류의 발언이 박근혜를 격동시켜 룰 개정에 나서게 할 목적으로 의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역효과의 부작용이 크다는 점은 직시할 필요가 있겠다. 자기당 후보를 뒤돌아 앉아 주판알이나 튕기는 옹색한 사람으로 만들어서 어쩌겠다는 것인가.
비박후보들의 경선룰 변경 요구는 익히 예상했던 것이다. 하나마나한 선거를 할 수 밖에 없는 후발 주자들 입장에서야 판을 흔들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 해볼 판이었으니 경선룰 변경 요구는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선수 바뀔 때 마다 룰도 바꾸나?'는 박근혜쪽의 부정적 반응도 당연한 것이다. 아무리 앞서가는 후보라도 끝나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게 선거니 룰부터 바꾸라고 달려드는 비박후보들의 주장을 불순한 정략적 의도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보는 것 또한 지극히 당연하다는 뜻이다.
사실 이 문제와 관련해 박근혜가 고민해야 할 지점은 당내외의 이런저런 논란이 아니라 국민정서다. 교과서적인 정답은 이미 나와 있다. 중요한 것은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하는 정치적 해법을 찾아가는 것이다.
국민이 납득 하는 방식과 수준에서 이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 가장 현명한 길이다. 박근혜가 100번 맞는 얘길 해도 국민이 납득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없다. 황우여 지도부가 아쉬운 것은 이런 문제를 정치적으로 풀려는 어떠한 시도도 하지 않고 있다가 결국 이 문제를 '비박후보 대 박근혜'간 대립구도로 만들어 버렸다는 것이다. 황우여 지도부는 때에 따라서는 박근혜와 비박후보들 모두로부터 상대적으로 독립해 자율적으로 이 문제를 풀어갔어야 했다. 정치력을 가지고. 그러나 황우여 지도부는 당헌당규만 따지다 당 경선관리위원회를 발족시켜 버렸다. 황우여 지도부가 박근혜 눈치만 본다는 말이 안 나올 수 없게 돼 버린 것이다. 물론 황우여 대표도 경선룰에 대한 논의는 경선관리위원회에서 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 말을 곧이 들을 비박후보들이 누가 있겠는가. 혹시 경선관리위원회도 출범했으니 이제 골치 아픈 경선룰 논란은 경선관리위원회가 알아서 하라는 뜻일까. 만약 그런 생각이라면 황우여 대표는 '관리형 지도부'도 못되는 '무늬만 지도부'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정당정치를 지향한다. 정권창출의 주체도 후보개인보다는 후보가 속한 정당으로 보려는 경향이 강하다. 정당정치 발전을 위해 정당에 대해 국고를 지원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이다. 그러나 정당정치 발전은 이런 헌법적 선언이나 국고보조만으로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헌법적 가치를 구현할 수 있는 정당지도부의 헌신과 행동이 필요하다.
당의 대통령 후보에 대해서도 할말은 하는 지도부, 당 대선후보들 간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정할 정치력을 갖춘 지도부가 있어야 정당정치가 발전할 수 있다. 그래야 대통령 권력에 대해서도 할말을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정당의 권위는 정당지도자들의 이같은 담대한 행동의 축적을 통해 만들어 진다. 새누리당 지도부의 취약한 정치력, 박근혜의 대리인 딱지를 자초하는 듯한 나약한 모습의 황우여 지도부가 진정 걱정스러운 것은 박근혜가 대통령이 됐을때 박근혜 권력과 여당 간의 일방적 관계가 연상되기 때문이다.
이 연상이 박근혜 대세론에 제동을 거는 가장 강력한 박근혜 비토론의 근거가 될 수도 있다.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박근혜와 새누리당 지도부는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고성국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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