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리 큐브릭(1928~1999) 감독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는 공상과학(SF)영화의 교과서로 종종 꼽힌다. 우주선 조종을 담당하는 인공지능 컴퓨터의 반란을 통해 인류 문명을 돌아보고 인간과 신의 관계를 되짚는다. 미국 우주선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1969년) 이전에 만들어진 이 영화는 지구와 달 왕복선, 달기지라는 당시로선 낯선 개념을 도입했다. 1960년대 치열하게 전개됐던 미국과 구소련의 우주 경쟁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으리라.
그러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묘사한 2001년의 풍경은 실제와는 많이 달랐다. 우주인들이 원형 우주선 복도를 트랙 삼아 조깅을 하거나 달기지를 건설해 놓고 지구에서 오간다는 것은 아직까지도 꿈과 같은 이야기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영화적 상상력이 앞서가도 너무나 앞서간 셈이다.
SF영화의 대가로 불리는 리들리 스콧의 출세작 중 하나인 '블레이드 러너'(1982)에서는 일본자본이 지배하는 로스앤젤레스의 2019년 모습이 등장한다. 거대한 전광판 화면 위로 기모노를 입은 일본 여인의 코카콜라 광고 영상이 흐른다. 복제인간을 뒤쫓는 형사 데카드(해리슨 포드)가 비를 피해 들어간 포장마차에서 일본 어묵으로 배를 채우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에이리언2'(1986)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외계 괴물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음모를 감춘 거대 기업의 임원은 일본인으로 묘사된다. 일본이 막강한 경제력을 발판으로 미국을 위협하며 '팍스 재패니카'를 도모하던 1980년대 시대상을 반영한 것이다. 암울한 미래의 모습과 경제 동물로 불리던 일본인들의 냉혈한 인상이 겹쳐지며 두 영화는 묵시록적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1990년대 초반 소니와 마쓰시타가 할리우드의 상징인 콜럼비아와 유니버설을 각각 인수했을 때 '블레이드 러너'와 에이리언2'의 예감은 맞아 들어가는 듯했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팍스 재패니카 대신 미국인들이 우려스러운 목소리로 입에 올리는 건 '팍스 시니카'(중국이 지배하는 세계 질서)이다. 1980년대를 대표하는 두 SF영화의 예측이 보기좋게 빗나가게 된 것이다.
스콧이 '블레이드 러너' 이후 30년 만에 선보이는 SF 영화 '프로메테우스'를 보기 전 조그만 기대와 호기심이 있었다. 미래 알 수 없는 행성을 배경으로 인류의 기원을 찾는다는 내용에 어떤 시대상을 담아낼 것인가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프로메테우스'엔 현재적 질문이 담겨 있지 않다. 신은 왜 인간을 만들었고, 누가 또 신을 만들었나 라는 인류의 해묵은 화두를 다룰 뿐이다. 21세기 첨단기술에 힘입은 아름다운 영상이 무의미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아무리 SF라지만 현재와는 무관한 미래의 모습이라면 공감도 얻기 힘들기 마련이다. 이것이 2억달러를 들인 블록버스터 '프로메테우스'의 첫 주 국내 관객이 60만명도 채 안 되는 이유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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