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대구 유니버시아드 경기 때 북한 여성응원단이 거리에 걸린 김정일 현수막이 비에 젖는다고 울고불고 하던 장면은 남한 사람들에겐 충격이었다. 예쁘장하고 순박해 보이기만 하던 그들은 딱히 누가 시킨 것 같지도 않았는데 앞다퉈 현수막을 향해 달려갔다. 극단적 개인숭배 세뇌 탓이니, 귀환 후를 의식한 오버액션이니 해석이 분분했다. 북한주민들이 김정일 참석 행사에서 눈물 범벅이 돼 발을 구르며 열광하는 모습은 이제 우리에게 익숙하다.
■ 6일 평양 김일성 경기장에서 열린 '조선소년단' 창립 66주년 행사는 또 다른 충격이었다. 흰 상의에 붉은 스카프를 맨 어린 학생들은 김정은이 연단에 등장할 때부터 울먹거렸다. 김정은은 4월 김일성 탄생 100주년 기념식에 이어 이날 두 번째 공개연설을 했다. 10여분의 연설 내내 소년단원들은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며 열광했다. 북한 성인 주민들이 눈물을 흘리는 것은 집단 히스테리나 연출이라고 쳐도 7~14세 어린 소년ㆍ소녀들의 눈물바람은 또 어떻게 봐야 할지.
■ 최고지도자 참석으로는 1994년 김일성 주석 이후 18년 만이라는 이번 소년단 창립기념식에는 두메산골 외딴섬 분교에 이르기까지 북한 전역서 2만여 대표가 참석했다. 선발된 소년단원들은 채탄공, 벌목공 등 평범한 근로자, 농민의 자녀 중심으로 고아와 전과자의 자녀도 포함됐다. 이들을 평양으로 실어 나르기 위해 특별기와 특별열차가 운행됐다. 북한 매체들은 3일부터 8일까지 계속된 기념행사를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분위기를 띄웠다.
■ 김정은은 소년단원들을 껴안기도 하고 함께 어울려 사진을 찍기도 했다. 대중연설 및 주민들과의 스킨십을 구사했던 할아버지 김일성 따라 하기다. 이런 모습들은 그가 어리고 미숙한 후계자가 아니라 인민에게 사랑을 베풀고 보살피는 어버이요, 사회주의 대가정의 가장으로서 이미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소년단원들의 눈물은 '김정은 어버이'의 배려와 사랑에 대한 '감격'의 표현일 것이다. 그런 눈물을 만들어 내는 북한 체제와 선동선전 시스템이 끔찍하고 두렵다.
이계성 수석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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