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4위의 경제대국 스페인이 결국 '수혈'(구제금융)을 받는다. 이대로 방치했다간 유로존 전체가 붕괴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구제금융 합의로 이어진 것이다. 하지만 앞서 구제금융을 받은 그리스, 포르투갈, 아일랜드의 방식과는 다르다. 스페인 정부가 아닌 은행권에 직접 지원이 이뤄지기 때문에 가혹한 재정긴축이나 경제개혁 이행 약속이 수반되지 않는다. 고통스런 일반 항암치료 대신 고통이 거의 뒤따르지 않는 표적 항암치료를 허용한 셈이다. 구제금융이라는 낙인이 찍혔음에도 불구하고, 국제 사회가 "파국을 면했다"며 환호하는 이유다.
정영식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어차피 스페인 혼자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이 충분히 알려진 가운데 외부의 도움을 통해 최악의 국면을 피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단기적으론 상당히 긍정적인 뉴스"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은 아직 많다. 우선 최대 1,000억유로인 구제금융 규모가 충분할 지에 대해 의구심이 적지 않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스페인 유동성 문제 해결을 위해 IMF가 추정하는 규모와 일치하는 수준"이라고 평가했지만, 시장은 다소 회의적이다. "1,000억유로 구제금융 지원은 유로존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작은 조치에 불과하며, 스페인에 대한 완전한 구제금융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충분한 규모가 아니다"라는 평가(영국 가디언)가 나온다.
지금 스페인 위기의 근원이 부동산 버블 붕괴에 따른 은행권 부실 확대라는 점도 문제다. 경기 위축에 따른 부동산가격 급락세에 제동을 걸지 않는다면 추가적인 은행 부실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자칫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과연 은행에만 수혈하면 스페인 정부가 외부 도움 없이 버텨낼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비록 스페인의 국가재정이 그리스나 포르투갈에 비해 상대적으로 양호한 편이라지만, 국채 금리가 7%에 육박하는 비정상적인 국면을 장기간 버티기는 힘들 것이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의 피닉스 카렌 전략가는 "장기적으로 스페인은 지속 가능한 금리 수준에서 국채를 발행할 수 없을 것"이라며 "결국 전면적인 구제금융이 필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미 구제금융을 지원 받은 국가들과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될 수 있다. 스페인에 대한 구제금융 방식은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이나 유로안정화기구(ESM)가 최대 1,000억유로를 은행구조조정펀드(FROB)에 직접 투입하면 FROB가 은행들에게 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비록 FROB가 정부기구이긴 하나 정부에 직접 돈이 투입되지 않고 은행 자본재확충에만 제한적으로 사용된다는 점에서 재정긴축 등의 고통스런 요구가 수반되지 않는다. 스페인에 대한 일종의 특혜인 셈인데, 긴축 프로그램을 진행 중인 그리스나 포르투갈 등이 반발할 소지가 다분하다.
김위대 국제금융센터 부장은 "다른 국가들이 긴축 요건을 완화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고, 향후 이탈리아 등도 같은 방식을 주장할 것"이라며 "자칫 자금 지원만 받고 책임은 지지 않는 모럴 해저드가 확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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