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심/심재천 지음/웅진지식하우스 발행ㆍ248쪽ㆍ1만2000원
지난해 중앙장편문학상을 받고 등단한 소설가 심재천(35)씨의 첫 단편집이다. 재치와 여운을 겸비한 단문을 능숙하게 구사하는 이 작가의 단편은 빈틈없는 구성과 심리 묘사라는 한국 단편의 전통적 요구에서 얼마간 벗어나 참신한 상황 설정, 뚜렷한 서사로 개성 있는 미감을 자아낸다.
수록작 '베레타'는 어느날 밥솥 옆에 놓인 권총을 발견한 남자의 이야기다. 맞벌이를 하는 그의 평범한 일상은 출처 모를 살상무기를 소유하면서 조금씩 껄렁하고 대담해진다. 남편의 일탈을 두려워한 아내가 경찰에 불법무기를 신고하자 그는 아내에게 총구를 대고 인질극을 벌인다. "그때 밥솥이 눈에 들어왔다. 전기밥솥은 여전히 값싸게 번들거렸다. (중략) 밥솥 앞에서 베레타는 다시금 꿈틀거렸다."(44쪽) 권총과 밥솥의 대조적 상징이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작가의 솜씨는 재기가 넘친다.
영상물을 보면 눈에서 피가 나는 남자('드라마틱'), 하루살이가 들어간 눈을 비비다 화가 나 아내를 고층 아파트에서 내던진 남편('아내의 펠라티오 향방') 등 특이한 인물이나 상황을 내세워 파격적으로 실마리를 풀어가는 단편도 여럿이다. 이중 '산'은 특히 인상적이다. 버려진 소년소녀들이 사람들이 모두 떠난 마을의 폐가와 폐허를 흙더미를 쌓아올려 하나씩 묻어간다. 그렇게 산을 이룬 마을을 유리한 고지로 삼으려 전쟁 중인 양측 군대가 번갈아 몰려오면서 아이들은 수난을 겪는다. 다양한 은유로 읽힐 수 있는 작품인데, 특이한 소재와 비극적 결말을 다루면서도 유머와 차분함을 잃지 않는 서술에서 신인답지 않는 균형감각이 엿보인다.
데뷔작 <나의 토익 만점 수기> 에 이어 작가의 두 번째 저작인 이 작품집은 그가 일간지 기자 생활을 접은 2008년 말부터 등단 전까지 신춘문예, 문예지 공모에 투고했던 단편 30여편 중 7편을 추린 것이다. 낙선작 모음집인 셈이다.(응모 당시 받았던 심사평도 책 말미에 붙였다) 그는 "누구의 가르침 없이 혼자서 더 나은 소설을 쓰고자 노력해온 과정의 산물"이라며 "작가 지망생들과 독학의 경험을 나누고 싶어 출간했다"고 했다. 그는 이 책을 실패담이라고 겸양해 하지만 과연 그럴지 두고 볼 일이다. 어쩌면 이 책은 비범한 재능을 제때 간파하지 못한 문단의 실패담이 될 수도 있다. 나의>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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