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씨 속씨 좋은 주인 아주머니를 만나 3년 넘게 한 집에서 잘 살고 있는 와중이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전셋값을 증명이라도 하듯 이사철이라는 봄 가을이 아닌 요즘에도 이삿짐을 지고 나르는 사다리가 자주 치솟아 있는 걸 목격하다 보니 이러다 나도 혹시? 하던 차에 걸려온 전화 한 통.
죄송해요, 여의도에 빚져 사둔 아파트 때문에 생활이 안 되어서 부득이하게 일산집 처분하려고요. 아뿔싸! 머잖아 닥칠 장마철을 앞두고 이게 무슨 날벼락이람. 그러고서 둘러본 내 집 모양새가 어찌나 짠하던지, 그런 류의 전화를 받아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 순간의 철렁함을 그 순간의 짜증을 그 순간의 나락을 그 순간의 허망을, 그리하여 자본주의 사회 속 내가 가진 모든 것의 신랄한 현재를. 매일같이 부동산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매일같이 집안 구석구석을 핥는 사람들의 혀가 문제랄 것도 없는 부분을 쓸어내리느라 정신 없었다. 어차피 제 집 삼을 것도 아닌데 왜 이리 평가에 박할까.
아무도 온다는 이 아직 없다만 그 덕분에 아침 저녁 내 집 쓸고 닦기에 여념 없으니 이 수고를 내 집에 대한 마지막 추억거리로 삼을 작정이다. 지상에 방 한 칸, 별과 같구나. 그러나 별은 총총 많기도 하지. 에고, 그 반짝임 아래 버려진 매트리스 위에 가만 앉아 층층마다 환한 집들을 바라보는 청승을 떨어본다. 잠이나마 편안히들 주무시라고 손으로 휘휘 굿나잇을 고하며.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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