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 회원국들이 불법이민을 막기 위해 솅겐조약(통행자유화 조약)을 손질하기로 했다. 자유로운 노동력의 이동이 EU 존립의 핵심 근거라는 점에서 통합 정신의 퇴색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EU 27개 회원국 내무ㆍ법무장관들은 7일(현지시간) 룩셈부르크에서 이사회를 열어 솅겐조약의 적용을 최장 2년 중단할 수 있도록 하는 개정안에 만장일치로 합의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한 회원국이 불법 이주자 단속에 '지속적으로 실패할 경우' 이웃 나라들은 국경 검문소를 다시 설치할 수 있게 된다. 국경 통제는 3개월 이상의 검토 절차를 거쳐 'EU의 공공정책과 치안에 심각한 위협이 확인'될 때에만 취해지며 6개월 단위로 최장 2년까지 연장이 가능하다.
개정안 합의에는 독일과 프랑스의 입김이 강하게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좌파 정부가 들어선 프랑스가 전임 니콜라 사르코지 정권의 유산인 국경 통제를 지지한 것이 특히 눈길을 끈다. 마뉘엘 발스 프랑스 내무장관은 "시리아처럼 정정이 불안한 국가로부터 난민이 대량 유입되는 상황이 닥칠 수 있다"며 개정안에 의미를 부여했다. 프랑스는 지난해 4월 '아랍의 봄' 당시 이탈리아 정부가 튀니지 불법 이민자들에게 임시 거주증을 발급해 프랑스로 가는 열차에 태워 보내자 크게 반발했었다.
이런 움직임은 유럽 전반의 장기화한 경기침체로 국수주의가 득세하는 흐름과 무관치 않다.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3월 대선 유세 과정에서 극우 표심을 잡기 위해 솅겐조약 탈퇴 가능성을 내비쳤으며, 스페인은 최근 프랑스에 접한 국경지역과 주요 공항에서 검문활동을 일부 재개하기도 했다. EU 국경관리기관인 프론텍스의 통계를 보면 조약을 위반한 불법이민은 2010년 10만4,000건에서 지난해 14만1,000건으로 35% 증가했다. 대부분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소말리아 등 가난과 전쟁에 시달리는 나라 출신이다. 유럽 경제위기의 진원지인 그리스 국민이 터키 국경을 넘다 적발된 것도 5만5,000건이나 됐다. 로이터통신은 "유럽에서 불법 이민자의 유입 속도는 점차 둔화하고 있으나 높은 실업률과 공공지원 축소 등 경제적 곤궁함을 이주민 탓으로 돌리는 여론은 오히려 늘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사회의 개정안이 실제 집행에 들어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개정안이 발효되려면 유럽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EU 집행부와 의회 모두 회원국들의 구상에 반대하고 있다. 자유로운 인적 교류는 EU가 단일 시장을 출범시키는데 필수조건이었기 때문이다. 마르틴 슐츠 유럽의회 의장은 "제한 없는 노동력의 왕래는 EU 통합을 떠받치는 가장 든든한 기둥 가운데 하나"라며 개정안 거부 방침을 분명히 했다.
●솅겐조약(Schengen agreement)
유럽 각국의 인적교류 활성화를 위해 검문검색 폐지와 여권검사 면제 등을 골자로 한 국경자유화 조치를 말한다. 1985년 6월 독일, 프랑스, 베네룩스 3국 등 5개국이 룩셈부르크 솅겐에서 통행제한 폐지를 선언한 데에서 유래됐다. 현재 영국, 아일랜드, 키프로스를 제외한 유럽연합(EU) 24개국과 비 EU 회원국 중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스위스, 리히텐슈타인이 가입돼 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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