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과 상생의 실종. 경제적 발전을 너머 이제 선진 민주주의 사회로 가야 할 2012년 한국은 심각한 사회 갈등과 이념적 양극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 우리 편이 아니면 무조건 틀렸다는, 관용도 소통도 없는 현실이다. 이로 인해 정파·계층·지역 사이의 분열과 갈등은 극단으로 치닫는다. 2009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사회갈등 지수가 4번째로 높다는 분석(삼성경제연구소)이 나올 정도다.
한국 사회는 어째서 토론과 통합의 통로를 잃고 있는 것일까. 거세게 밀어닥친 신자유주의 물결로 글로벌 경쟁 시대가 열리며 높은 연봉, 승진, 일자리, 스펙을 향해 만인이 투쟁하는 '피로한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서구 선진국과 달리 경쟁의 룰 자체가 여전히 '불공정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이 시대 한국인은 그래서 지치고 분노한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부채비율 등 지표가 건전해졌다. 10대 재벌의 자산은 2008년 국내총생산(GDP)의 55.1%(564조9,000억원)에서 2010년 75.6%(886조7,000억원)까지 늘었다. 치열한 경쟁이 강한 기업을 만들어 낸 것. 하지만 기업의 성과 뒤에 사람의 희생이 있다. 상시 구조조정으로 인한 해고자 양산, 비정규직의 확산과 차별, 중소 자영업자를 위협하는 대기업과의 경쟁은 중산층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국가 경제 지표와는 괴리된 국민의 불안정한 삶이 우리 사회를 뒤흔든다.
"내가 뭐가 부족해서" 비정규직의 비애
2000년 서울의 4년제 사립대를 졸업한 정모(36)씨는 행정고시와 7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필기시험을 통해 선발하는 공무원 시험은 상대적으로 공정한 경쟁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공직의 문은 좁아 4년만에 포기했고, 아르바이트로 했던 학원 강사가 직업이 됐다.
한문학을 전공한 그는 서울의 작은 학원에서 한자를 가르쳤고 입시철에는 논술 강사로도 뛰었다. 학원 강사와 대형 마트 판촉원으로 일하며 손에 쥐는 월 수입은 70만~80만원에 불과했다.
고용계약서 한 번 써본 적 없이 학원을 전전하기를 11년. 정씨는 교직과정 이수 경력을 살리려 중ㆍ고교 기간제 교사에 지원했으나 수요 자체가 없었다. 그러다 2010년 8월 경기의 한 고교에 병가를 낸 정규직 교사의 '대체 인력'으로 고용됐다. 언제까지 일할지는 정규직 교사가 얼마나 병가를 연기하느냐에 달려있었다. 정씨는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기간인 6개월을 2주일 남기고 학교를 떠났다.
대학졸업 후 13년간 일해 남은 것은 집 보증금 1,300만원, 적금 800여만원, 그리고 500여만원의 빚. 정씨는 "비정규직에서 벗어나려 수없이 노력했지만 이제 체념했다. '내가 뭐가 부족해서 이럴까'하고 억울해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앞으로도 정규직이 될 순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슈퍼까지 대기업과 경쟁" 몰락한 자영업자
실크스카프 제조회사에 다니던 임모(52)씨는 1997년 외환위기로 회사가 부도를 맞아 실직한 뒤 경기 고양시에 66㎡(20평) 남짓의 슈퍼마켓을 차렸다. 수중의 1,000만원에 지인들에게 꾼 돈을 더해 월세로 마련한 가게였다.
5년 전 인근에 대형 마트가 2개나 들어서면서 형편이 기울었다. 그는 "마트에 지지 않기 위해 900원에 들여온 모두부를 1,000원에 팔며 버텼는데, 2년 전부터는 다시 한 블록 건너에 기업형슈퍼마켓(SSM), 편의점까지 소매상 6곳이 더 들어섰다"고 한탄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번 달에 또 교차로를 하나 사이에 두고 대기업의 100평대 대형 식자재 마트가 들어섰고, 건물 주인은 그에게 '직접 다른 장사를 해볼 생각이니 6월까지 비워달라'고 통보했다.
"양가 부모님 생신 한번 못 챙기고, 명절 한번 쉬어 본 적 없이 일했는데 슈퍼마켓 16년 만에 남은 것이라곤 빚 5,000만원 뿐"이라는 임씨는 "문어발식을 넘어서 지네발식 영업을 하는 대기업에게 공생, 동반성장이란 헛소리"고 말했다.
"가족 같던 직원을" 구조조정 피해자
KT 충북 음성지점의 고객만족팀장으로 일하다 2009년 퇴직한 반기룡(51)씨는 퇴직한 지 3년이 지났지만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며 매일 9가지 약을 먹는다. 그는 회사에서 구조조정을 당하지 않았지만 이를 추진하는 업무를 맡았었다.
"2007년 부진인력(C Player) 퇴출 프로그램에 따라 퇴출 대상자를 관리했다"는 반씨는 "아예 인원을 정해놓고 각 지부, 지점에 할당해, 실적이 안 좋고 회사에 비판적인 직원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보고해야 했다"고 말했다. 반씨는 해당 직원이 지각을 몇 번 했는지, 점심시간을 넘긴 적이 있는지, 고객과 다툼은 없었는지 등을 카드에 적어 월 단위로 보고했다. 반씨는 "퇴출 대상에겐 분기별로 각종 시험을 치르게 해 들들 볶았다. 성적이 좋다고 구제되는 것도 아니었다"고 말했다.
반씨의 담당은 공교롭게도 그의 고교 7년 후배였다. "인간적으로도 괴로웠고, 후배와는 원수가 됐다. 고교 동문회에서도 나쁜 놈으로 찍혔다." 청주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1984년 KT 6급 공채 1기로 입사했던 반씨는 "한 때 KT는 가족적인 분위기가 강점이었고, 삼성보다 인기 있던 직장이었다. 그런데 민영화 이후 회사는 경쟁만 강조해 '상생이 아닌 살생'이 됐다"고 비판했다.
기업은 살고 사람은 죽는 경쟁사회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외환위기를 맞은 1998년 12만6,000여명에 달했던 정리해고자는 이후 줄었다가 지난해 다시 10만명을 넘었다(10만3,000명). 상시 구조조정으로 생겨난 해고자들은 취직에 실패한 청년들과 함께 비정규직 일자리로 몰려든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비정규직 노동자는 599만명, 임금노동자 3명 중 1명 꼴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선진 경영'이다. 하지만 비정규직은 평균적으로 정규직 임금의 58%밖에 못 받는 저임금, 고용불안에 시달린다.
차라리 가게를 차리겠다는 이들도 많지만 자영업 시장이라고 만만치 않다. 2008년 기준 우리나라 자영업자 비중은 33.9%로 OECD 평균(15.8%)의 2배이며, 임씨처럼 대기업과의 경쟁에 고사하기 십상이다.
최근 10년새 가속화된 시장개방과 자율화로 인해 대기업 최고경영자부터 학생까지 글로벌 경쟁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 어린 학생부터 학력과 스펙 확보를 위해 질주하고, 잘 나가는 이들조차 자기경쟁력을 갈고 닦는 데 골몰한다. 독일 카를스루에조형예술대 한병철 교수는 이러한 자기착취 시대를 '피로 사회'라고 정의한다. 이 경쟁에는 승자가 보이지 않는다.
한준규기자 manbok@hk.co.kr
김혜영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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