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짧은 기간에 두 번의 기적을 만들었다. 산업화와 민주화가 그것이다. 먼저 산업화다. 196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1인당 국민소득 100달러로 세계에서 가장 가난했던 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 중위 수준의 경제규모와 국민소득을 가진 경제 강국의 반열에 올라설 줄 누가 짐작이나 했겠는가. 다음으로 민주화다.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피기를 기다리는 건 마치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는 걸 바라는 것과 같다"던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의 51년 사설을 비웃기라도 하듯, 우리나라는 이미 유럽 주요 국가들과 동등한 수준의 정치적 민주주의를 달성했다. 이러한 기적에는 우리 세대의 기여도 있었겠으나 대부분은 아버지와 할아버지 세대의 비상한 노력과 희생 덕분이다. 나는 이분들의 고단했던 삶과 큰 성취에 감사와 찬사를 보낸다.
10일은 1987년 6ㆍ10항쟁의 25번째 기념일이다. 70년대와 80년대에 걸친 산업화 시기 동안 독재정권에 의해 억압되었던 사회적 자유권과 정치적 민주주의는 87년 6ㆍ10항쟁을 기점으로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국면으로 진입했다. 그래서 나는 6ㆍ10항쟁을 일종의 혁명이라고 생각한다. 이후 문민정부 5년과 민주정부 10년을 거치는 동안 대한민국의 정치적 민주주의는 더욱 공고해졌고 선진국 수준에 이르렀다. 산업화와 정치적 민주화의 달성이라는 두 번의 혁명적 변화에 이어, 이제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의 달성이다. 지난 15년 동안 우리나라는 신자유주의 발전 전략으로 인해 사회경제적 양극화가 급속하게 진행됐고, 그 결과 미국과 함께 세계에서 소득과 자산의 불평등이 가장 심한 나라가 됐다. 경제와 산업의 양극화와 민생불안의 심화로 인해 우리나라는 이제 더 이상의 경제사회적 발전을 기대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우리나라는 후진 농업국가에서 제조업 중심의 선진 산업국가로, 억압과 인권유린의 독재국가에서 유럽 수준의 정치적 민주국가로 탈바꿈했다. 이제 세 번째 과제에 도전해야 한다. 양극화와 민생불안의 시장만능국가에서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의 달성을 의미하는 보편주의 역동적 복지국가로의 질적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 산업화 혁명과 민주화 혁명에 이은 세 번째 혁명, 즉 복지국가 혁명이 그것이다. 먼저, 사실상의 무상의료와 무상교육이 필요하다. 이는 인간의 존엄과 정의에 부합할 뿐만 아니라 성장의 기반이 되는 인적 자본과 사회적 자본의 확충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과제다. 국민건강보험의 보장 수준과 대학생 등록금 지원 규모를 매년 찔끔찔끔 올리는 점증적 시도나 기존의 정책 틀을 그대로 둔 채 관리만 개선하는 식의 기술적 접근으로는 양극화와 민생불안의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 근원적인 처방이 요구되므로 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사실상의 무상의료와 무상교육이 가능한 수준으로까지 국민건강보험과 고등교육의 재정을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
다음으로 일자리의 양극화에 따른 불안과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 전략이 요구된다. 현재 평균임금의 37%에 불과한 최저임금을 단기간에 국제기준인 평균임금의 50%까지 끌어올려야 한다. 이때 쏟아지는 실업자에 대해선 정부가 기초생계를 지원하고 직업훈련과 일자리 알선 등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을 통해 더 나은 일자리를 보장해야 한다. 정부가 사회서비스를 포함한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 적극 나서야 하며, 일자리의 양극화를 초래한 경제와 산업의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한 경제민주화 조치에 적극 나서야 한다. 그리고 온 국민은 자신의 경제적 능력에 따라 건강보험료와 세금을 누진적으로 더 내야 한다. 이는 우리 경제사회의 운영원리를 질적으로 바꾸는 혁명적 변화다. 국민적 동의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기 위한 정치사회적 공론화가 요구된다. 우리는 안타깝게도 지난 총선 시기를 놓쳐버렸다. 대선을 앞두고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여야 정치권이 시민사회와 함께 복지국가 혁명을 위한 정치사회적 공론화를 주도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제주대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