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침묵을 끝내고 연일 목소리를 높이는 재계, 고삐를 더 죄려는 정치권, 더 높은 수준의 개혁을 요구하는 시민사회단체까지. 경제민주화를 둘러싼 재계와 정치권, 시민사회단체간 공방이 점점 더 가열되고 있다. 이들의 공방은 총론(경제민주화 개념의 타당성)에서부터 각론(개별 정책 및 법안)까지 전방위적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19대 국회 개원과 함께 몇 가지 재벌개혁이슈들은 당장 논란이 될 전망이다.
우선 순환출자규제. 5일 열린 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실천모임'에서 이혜훈 최고위원은 "재벌개혁은 경제민주화를 위한 선결조건"이라며 "직접 지분을 늘리지 않고도 기업집단을 지배할 수 있는 환상형 순환출자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순환출자는 현 재벌 지배구조의 심장부에 해당하는 부분. 만약 순환출자를 전면적으로 규제할 경우 재벌체제는 와해될 수도 있을 만큼 예민한 사안이다. 삼성은 최근 수직출자로 바꿨지만 현대자동차 등 상당수 재벌그룹들은 여전히 이런 순환출자구조를 갖고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순환출자는 단순히 기업을 손쉽게 지배하거나 자식에게 물려주기 위한 선택이 아니다"면서 "증시침체로 주가가 떨어진 상황에서 순환출자를 해체시킨다면 오너지분율이 낮은 기업들은 적대적 M&A공포가 대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순환출자 규제를 논하려면 먼저 황금주 같은 경영권 보호를 위한 장치를 국내에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의 법제화도 논란거리다. 대한상공회의소 관계자는 "중기적합업종의 경우 18대 국회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자율적인 합의를 원칙으로 하고 동반성장위원회의 위상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법제화 논란을 일단락했다"며 "그런데 다시 법으로 강제하려는 것은 경제민주화 바람에 편승한 것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 영업시간을 더 제한하려는 유통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강력 반발하고 있다. 현재 민주당에선 자정~오전 8시로 되어 있는 폐장시간을 지자체 조례에 따라 오후 9시~오전 10시로 확대할 수 있도록 하는 법 개정안을 제출한 상태. 한 대형유통사 관계자는 "이런 식이라면 차라리 마트ㆍSSM 금지법을 내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경제민주화 개념 자체를 부정하고, 재벌개혁법안들을 모조리 거부하며, 자기 목소리를 키워가고 있는 재계에 대해 시선은 여전히 싸늘하다. 특히 진보시민단체 쪽에선 정치권을 우회 압박하며, 재벌개혁에 대한 요구를 강화해나가고 있다.
경제개혁연대 부설 경제개혁연구소는 지난 5일 '19대 총선공약분석과 2012년 대선 시사점'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경제민주화 공약을 기준으로 3당의 정책을 분석했다. 위평량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원은 "총선에 이어 대선에도 여야 할 것 없이 정치권의 최대 화두가 '경제민주화'가 가능성이 높다"며 "주요 정당의 공약 비교를 통해 정책 대결을 유도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경제개혁연대는 보고서를 통해 "새누리당은 경제민주화 정책의 우선순위 중 일곱 번째에 배치해 추진의지가 미흡하다"고 지적했고 민주통합당에 대해선 "경제민주화 정책에 가장 적극적이지만 정책 집행의 일관성 측면에서 신뢰를 주지 못한다"고 꼬집었다.
새누리당에서 '경제민주화'논의를 주도했던 김종인 전 비대위원은 "재벌들은 경제민주화를 규정한 헌법 제119조2항 폐지를 요구하고 있지만, 그것이 있어야 시장경제가 오히려 건강하게 돌아 갈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환구기자 red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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