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이 금융 등 신용사업과 농축산ㆍ유통 등 경제사업의 분리를 통해 새롭게 출범한 지 9일로 100일째를 맞는다. 그간의 성과를 자랑하기에 딱 좋은 시기이건만, 농협 분위기는 오히려 비상시국을 방불케 한다. 신경분리가 채 안착하기도 전에 농협 노동조합의 총파업 결의와 금융감독원의 강도 높은 종합검사, 농협금융지주 사외이사의 사퇴 등 각종 악재가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출범 이후 조직 안정화를 최우선 과제로 꼽았던 농협의 바람과는 정반대로 점차 내우외환에 휩싸이는 분위기다.
우선 지난달 30일 농협 노조의 총파업 결의로 조직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 정부가 농협에 대한 지원(5조원) 대가로 사측과 체결한 경영개선이행약정(MOU)이 구조조정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게 노조의 주장이다. 사측은 MOU를 체결하면서 당초 담으려 했던 '인력조정', '인건비 수준 적정화' 등의 항목을 제외했다고 밝혔지만, 노조는 "내용만 완화된 것이라 언제든 정부와 사측이 항목을 수정해 인력을 조정할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노조는 총파업에 앞서 정시에 '칼퇴근'하는 준법 투쟁을 진행 중이다. 사측 대응을 보며 점차 파업 강도를 높여나간다는 방침인데, 불법파업 논란을 없애기 위해 일단 상급단체인 금융노조와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 간 산별교섭을 갖고 결렬되면 중앙노동위원회에 조정신청을 낼 계획이다. 이런 절차를 감안하면 총파업 시점은 7월 15일 전후가 될 전망이다.
내부 악재는 또 있다. 농협 신용사업의 주축인 농협금융지주는 사외이사 2명이 한꺼번에 사퇴 의사를 밝혀 출범 석 달 만에 '식물 이사회'로 전락할 처지에 놓였다. 이만우 새누리당 의원이 겸직 논란에 휩싸여 4일 사외이사직(이사회 의장도 수행) 사퇴 의사를 표명한 데 이어, 이장영 한국금융연수원장도 6일 사외이사를 그만두겠다고 밝혔다. 농협금융지주 자회사인 농협은행이 국내 은행들이 출자해 만든 금융연수원 회원사여서 역시 겸직 논란이 일었다. 농협금융 이사회 규정상 사외이사 수가 전체 이사 수의 과반이 돼야 하는데, 이들 2명이 사퇴하면 사외이사(2명)가 사내이사(3명)보다 적어져 이사회 의결이 효력을 잃는다.
농협금융지주는 진작부터 이 의원 등의 사외이사 겸직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잇따랐지만, 그때마다 "두 사람의 결정에 따르겠다"며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더욱이 이들에게 "조직이 안정될 때까지 사임을 보류해 달라"는 요청까지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겸직을 둘러싼 싸늘한 여론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사태를 더 꼬이게 만든 셈이다. 금융지주 관계자는 "최대한 후임 선출 절차를 서둘러 공백을 해소하겠다"고 말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금융감독원이 1일부터 NH농협은행과 농협중앙회를 상대로 강도 높은 종합검사에 나서는 등 외부 견제 또한 만만찮다. 금감원은 농협이 대형 전산장애 사고를 여러 번 일으켰던 만큼, 한 달간 이어질 검사에 30여명의 특수은행검사국 인력을 투입해 IT 부문 등을 집중적으로 들여다 볼 계획이다. 농협에서는 작년 4월 사상 최악의 전산 장애가 발생해 복구 작업에 한 달 가까운 시간이 걸렸고, 이후로도 인터넷뱅킹이나 자동화기기(ATM)가 작동하지 않는 등 각종 전산사고가 빈발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금융부문이 중앙회에서 떨어져나갔다고는 하나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다"며 "농협의 지배구조와 경영 투명성을 포함해 전 분야를 샅샅이 훑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농협 측은 "금융 계열사 CEO들의 가장 큰 과제가 조직 안정화인데 종합검사 등으로 내부가 어수선한 게 사실"이라며 "저축은행 사태 이후 처음 하는 검사여서인지 강도가 상당히 센 편"이라고 우려했다.
강아름기자 s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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