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5일 4대강 담합 건설사들에 1,000억원대 과징금 처분을 내렸지만, 예상과는 달리 단 한 곳도 검찰에 고발 조치하지 않아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공정위에 따르면 건설사들의 담합은 2008년 초부터 시작됐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대운하팀장을 만난 현대건설, 삼성물산, GS건설, 대림산업, 대우건설 등 5개 대형 건설사가 협의체를 만들어 사업추진 계획을 논의한 게 시작이다. 하지만 대선 공약인 대운하사업 반대 여론이 거세지면서 4대강 사업으로 바뀌었고, 사업 성격도 민자유치가 아닌 턴키(설계ㆍ시공 일괄수주 방식) 입찰로 전환됐다. 경쟁입찰 방식이 결정된 시점부터는 건설사들의 사업 논의가 담합으로 간주되는 셈이다.
하지만 이들은 오히려 협의체의 덩치를 더 키워 5개 대형 건설사로 구성됐던 협의체가 19개로 불어났다. 담합을 주도한 현대건설, 대림산업 등 6개 건설사는 전국 15개 공구 중 영산강 2개 공구를 제외한 13개 공구를 나눠먹기식으로 입찰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시공능력 평가순위 6위와 7위인 포스코건설과 현대산업개발이 1개 공구씩을 요구했고, 결국 대우건설이 양보해 나머지 5개 업체는 2개 공구씩을 맡았다.
이 과정에서 두산건설, 롯데건설, 동부건설 등 3개사가 공구를 배정받지 못한 것에 불만을 품고 별도 컨소시엄을 조직했다. 협의체에 대항한 이 컨소시엄은 모두 다섯 곳의 입찰에 참가했으나 낙동강 32공구(당초 삼성물산 배정 분)만 낙찰됐다. 이들은 비록 협의체와 경쟁했으나 당초 협의체에서 담합을 모의했기 때문에 위법한 것으로 공정위는 판단했다.
일부 건설사는 공정위 조사가 시작되자 담합 사실을 자진신고 했으나 ▦공정위가 모르는 새로운 사실 제공 ▦자진신고 시점부터 즉각적인 담합행위 중단 등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해 자진신고자 지위는 인정받지 못했다. 공정위는 "1차 턴키 입찰에 대해 공정위 조사가 시작되자 협의체가 와해돼 2, 3차 턴키 입찰에선 담합 정황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공정위의 이 같은 설명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해도 담합 관련 매출 규모(4조1,000억원)를 감안하면 처벌 수위가 지나치게 낮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4대강 사업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다 보니 공정위 조사가 부실하게 이뤄진 측면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대통령과 특수관계인 현대건설이 담합에 가담한 사건인 탓에 공정당국이 몸을 사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건설사 관계자도 "한두 명의 진술에 의존해 모든 업체들이 담합했다고 결론을 내는 등 조사가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면서 "법정에 가면 과징금이 더 감면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담합 조사가 시작된 지 2년8개월이나 지난 시점에 결론이 나온 데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4대강 사업이 졸속, 부실로 이뤄졌다는 비난이 거세지자 건설사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려는 전형적인 물타기 수법이라는 것이다. 이 사건은 당초 민주통합당 이석현 의원이 2009년 10월 국정감사에서 담합 의혹을 제기하면서 불거졌다.
이처럼 공정위 조사가 부실하다 보니 관련 건설사들의 반발도 거세다. 4대강 사업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편향된 결정이라는 게 업체들의 주장이다. 4대강 사업에 적용된 보(洑)의 경우 최신 기술을 필요로 하는 만큼 설계 능력을 갖춘 국내 건설사가 8개뿐인데, 과열 경쟁을 피하기 위해 서로 어느 공구에 입찰했는지 알아본 것이지 나눠먹기는 아니라는 것이다.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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