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신임 대법관 후보자로 임명 제청된 김신(55) 울산지법원장은 소아마비 장애를 딛고 판사로 임용돼 30년 동안 지역에서만 근무한 정통 향판(鄕判)으로 분류된다. 김 원장은 1982년 사법연수원을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했지만, 당시 대법원은 장애를 이유로 김 원장을 법관으로 임용하지 않아 파문이 일기도 했다. 비난 여론이 커지자 법원은 1983년 2월 김 원장을 동기들보다 5개월 늦게 법관으로 임용했다.
김 원장은 법관이 된 이후 장애인전도협회 등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사회적 약자의 권익 보호에 앞장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국민연금 가입 전에 장애 징후가 있었더라도 질병의 대표적 증세가 연금 가입 이후에 나타났다면 '가입 중 발생한 질병'으로 봐야 한다"는 판결을 통해 국민연금에서 장애의 범위를 확대시켰다. 또 "불법체류 중인 이주노동자가 단속을 피하는 과정에서 다쳤다면 산업재해로 봐야한다"고 판결해 이주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의 권익 보호에도 기여했다.
그는 이번에 임명 제청된 4명의 후보자들 가운데 상대적으로 야권 성향의 진보적 인물로도 평가된다. 부산고법 행정1부 수석부장판사이던 지난 2월에는 현 정권의 4대강 살리기 사업에 대해 처음으로 위법성을 지적해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그는 4대강사업 취소청구 소송을 낸 원고에 대해, 사업이 사실상 끝난 상황에서 취소할 경우 공공복리가 침해된다는 이유로 청구를 기각하면서도 "낙동강 살리기 사업은 '500억원 이상의 예산이 투입되는 국책사업의 경우 경제성 예비타당성 조사를 거쳐야 한다'는 국가재정법을 위반했다"고 명확하게 지적하는 판결을 내렸다.
김 원장이 대법관에 임명된다면 2004년 조무제 전 대법관 퇴임 이후 8년 만에 향판 출신 대법관이 탄생하게 된다. 그는 임관 이후 부산지법과 고법, 울산지원 등에서 민사, 형사, 행정, 파산 등 다양한 재판 업무를 담당했다. 지역에서는 재판실무와 지역사정을 적절히 조율하며 무난하게 일을 처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장애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법리 연구를 지속하는 등 재야 법조계의 신망도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고영한(57) 법원행정처 차장은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4년간 지내고 법원행정처 요직을 두루 거친 엘리트 판사로 분류된다. 1984년 판사에 임용된 뒤 주로 서울과 수도권 지법에서 근무했으며 이후 법원행정처 건설국장, 서울중앙지법 파산수석부장 등을 역임했다.
그가 1991년 서울고법 판사 재직 당시 작성한 '국회의원 면책특권 사건' 판결문은 근대 사법 100년사의 100대 판결문 중 하나로 선정되는 등 탁월한 업무능력도 인정받고 있다. 고 차장이 대법관에 임명되면 호남 출신 대법관은 이상훈(광주), 박보영(전남) 대법관 등 3명으로 늘어나게 된다. 고 차장은 이상훈 대법관과 광주제일고 동문이기도 하다.
고려대 법대 출신으로 비(非)서울대인 김창석(56) 법원도서관장은 법원의 대표적인 법률이론가로 평가된다. 그는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저가 발행 사건과 관련된 대법원 파기환송심을 맡아 13년 만에 사건을 마무리했다. 부패전담부 부장으로 다수의 부패사건을 처리했으며, 법원 내 조세법 커뮤니티 창립 멤버이자 제3대 회장을 역임하는 등 조세법 분야에도 조예가 깊다.
김 관장은 지난해 서울고법 부장판사 재직 당시에는 금성출판사 근현대사 교과서 수정명령 사건에 대해 1심 판결을 뒤집고 국가의 손을 들어주면서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그는 "교과부의 검정 권한에는 검정된 교과서 내용을 교육 목적에 적합하게 추후 수정하도록 하는 권한도 포함된다"며 국가의 적극적인 심사권을 인정했다.
검찰 출신인 김병화(57) 인천지검장은 검찰 내에서 학구파 검사로 통한다. 사법시험에 합격하기 전 행정고시에도 합격한 고시 2관왕으로 검사 임용 후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 방문학자로 공부한 뒤, 미국 형사법과 관련된 논문을 다수 집필했다. 인천지검장 재직 당시에도 지역 법원, 학계 인사들과 함께 중국연구회를 조직해 세미나를 여는 등 열정을 보였다.
서울중앙지검 형사부장 재직시에는 장기이식 관련 비리 사건과 무자격 의료인 사건 등을 처리하고, 중국산 김치나 농산물의 원산지를 허위표시한 '유해식품 사범과의 전쟁'을 주도했다. 또 대구지검 특수부장 시절에는 임대차계약서 등을 허위로 작성해 생계형 창업자금 등 공공기금을 가로챈 조직을 검거하기도 했다.
정재호기자 next88@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