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타고라스 시대엔 수의 개념 정의조차 어려웠어요. 1은 이성, 2는 여성, 3은 남성을 의미한다는 식으로 수에 상징을 부여했지요. 이젠 누구나 지하 1층을 보고 마이너스 1을 연상할 만큼 수의 개념이 일상적으로 쓰이고 있잖아요?"
올해 호암상(과학 분야)을 수상한 김민형(49) 영국 옥스퍼드대 수학과 교수가 4일 민족사관고(강원 횡성 소재)를 찾아 특강했다. 윤정일 민사고 교장의 요청으로 성사된 특강은 다산관 강당에서 열렸으며 1학년생 140여명이 자리를 가득 메웠다.
특강 주제는 '수와 공간'. 포스텍 수학과 석좌교수도 맡아 한국과 영국을 오가면서 연구와 강의를 하고 있는 그는 '수학 천재'답게 수학과 관련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았다.
"아무리 복잡한 수학적 개념이라도 500~600년 뒤엔 상식이 된다"고 말문을 연 그는 강연 내내 수와 기하학의 역사적 개념과 이들의 연관성을 설명했다. "전공인 정수론과 수와 공간과의 관계에 대한 학생들의 흥미를 유발하고 싶었다"고 했다.
수학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대부분이지만 "수학을 왜 배우는지 모르겠다"는 푸념 섞인 질문도 나왔다. 김 교수는 "수학은 세상의 모든 지식으로 들어가는 열쇠이기 때문"이라고 정리했다. "톨스토이의 에 보면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역사의 미분·적분학을 개발해야 한다'는 대목이 나와요. 수학적 구조를 역사 연구에 적용하듯이 수학과 모든 학문은 연결되어 있죠."
다소 난해한 주제의 강연이었지만 "흥미롭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임채원(16)양은 "수학은'성적'으로만 여겼을 뿐이었는데 강연을 들으니 수학이 수수께끼 같기도 하고 철학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성시윤(16)양도 "수학이 현실 세계에서 어떻게 쓰일 수 있는지 알게 됐다"고 전했다.
2학기부터 포스텍에서 정수론을 강의할 김 교수는 21세기 최고의 수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1985년 서울대 수학과를 조기졸업한 뒤 미국 예일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매사추세츠공대(MIT), 퍼듀대, 런던대 교수를 지냈다. 산술 대수 기하학의 고전적 난제를 풀 수 있는 혁신적 이론을 제시한 장본인도 김 교수다. 이를 두고 국제 수학계에서는 수학의 7대 난제 중 하나인 '버츠와 스위너톤- 다이어 추측'만큼 중요한 업적이라고 평가한다. 특히 그는 이런 이론 제시 과정에서 산술 기하와 전혀 관련 없는 위상수학의 방법론을 도입해 '창조적 수학자'로도 불린다. 비결을 묻자 "20년 간 머릿속에 떠올리던 아이디어를 논문으로 풀어낸 결과"라며 "다른 학문과 마찬가지로 수학자에게도 생각하는 힘이 중요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영국 대학에선 수학과 학생들을 뽑을 때 일부러 학생들이 배우지 않았을 법한 문제를 제시하고 어떻게 해결하는가를 봅니다. 지식보다는 생각하는 능력을 파악하는 거죠. 우리나라 학생들은 배운 지식을 효율적으로 풀어내는 능력은 월등하지만 생각하는 능력에선 아쉬울 때가 많아요."
김 박사는 '제2의 김민형'을 꿈꾸는 고교생들에게 수학자로서의 목표도 내놨다. "수와 공간의 관계를 더 공부해서 공간이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 알아내는데 도전할 생각입니다."
횡성=송옥진기자 cli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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