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데스크 칼럼] "보건복지부를 '보복부'로 불러라"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데스크 칼럼] "보건복지부를 '보복부'로 불러라"

입력
2012.06.03 12:09
0 0

대학의 인기학과 랭킹은 우리 사회 현실을 반영한다. 특정 직종이 뜨면 그해 대입 전형에서 관련 학과 경쟁률이 여지없이 치솟는다. 물론 끄떡없는 전통의 인기학과가 있긴 하다. 문과에서는 법대(지금은 주요 대학들이 대부분 법학전문대학원 체제로 전환했다), 경제ㆍ경영학부, 이과는 의대와 전기전자공학 계열 정도일 것이다. 이 중에서도 '부동의 1위'를 지키는 전공은 의대다. 공부 좀 한다는 자녀 둔 부모 중에서 자식이 의대에 갔으면 하는 생각 한 번 안 해봤다면 거짓말이다.

개업의들이 먹고 사는 문제를 고민한다면 그건 100% 뻥이라는 시절이 있었다. 병ㆍ의원 수가 많지 않았고, 배출되는 의대생 수도 적당했고, 여기에 수가(酬價)도 적절했던 까닭에 "별 재미를 못 본다"는 얘기는 뭔가 다른 곡절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흔치 않았다.

지금은 어떤가. 개업의에게, 또는 페이닥터(월급쟁이 의사)에게 "벌이가 쏠쏠하지요?"라고 묻는다면 십중팔구 "화성인 아니냐"는 비판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개업의들 사이에 "힘들어서 못해 먹겠다"는 푸념 반, 한탄 반 자조가 나오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래서일까. 개업의들이 회원으로 가입해 있는 대한의사협회의 요즘 행보가 아주 삐딱하다. 자영업자처럼 자급자족해야하는 일반 의사들의 시계(視界)가 잔뜩 흐려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포괄수가제에 반기를 든 게 단적인 예다. 뜯어보면 의협의 주장 중에서 정부가 새겨 들여야 하는 부분이 적지 않다. 개별 진료 행위에 대해 지급하던 수가를 질환군으로 바꿔 일괄적으로 적용하면 의료의 질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고 한다. 진료비가 고정돼 있다면 일종의 '비즈니스'를 하고있는 의사들은 재료비나 검사료 따위를 아낄려고 할 것이고, 중소 병원에서는 고위험 환자들을 기피할 개연성이 높다는 논리다. 이게 결국 의료 수준 저하로 이어지고 환자 선택권 또한 실종된다고 의협은 외친다. 포괄수가제 시행을 결정한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 탈퇴를 선언한 것도 일면 수긍이 간다. 전에도 그랬던 것 처럼 정부와 치열한 논쟁을 주저하지 않는다면 포괄수가제 허점을 보완할 여지는 있다고 본다.

그런데 노환규 의협 회장의 세련되지 못한 처신이 자꾸 거슬린다. 지난해 12월 의협 임시대의원총회의 간선제 채택 결정에 반발해 전임 회장에게 액젓과 계란을 던진 강경파여서 주목했었는데, 의협의 새로운 수장이 된 뒤에도 거친 언사와 앞뒤 안 가리는 저돌적인 행보는 여전한 것 같다. 그가 엊그제 의사들에게 보낸 '대회원 서신문'은 스스로의 거울이었다. 포괄수가제에 대해 나름의 분석의 틀을 제시했고 딴지를 걸기도 했다.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자신의 이미지를 스스로 격하시키는 몇가지는 의협 회장 답지 못했다. 그는 보건복지부를 '복지부'가 아닌 '보복부'로 불러 달라고 했다. 저급하기 짝이 없는 발상이다. 인터넷에서 우스갯 소리로 떠돌아다닐법한 단축어를 최고 전문직이라는 의사들한테 주문한 것이다. "인내하고 기다려달라. 그리고 때가 되면 분노하고, 참여해 행동해 달라"고도 했다. '분노', '참여, '행동'같은 다분히 주관이 개입된 표현을 동원한 것은 집단 휴원을 염두에 둔 일종의 '지침'으로 인식될 수 있다. 의료계의 다른 축인 대한병원협회가 포괄수가제를 받아들였다는 이유로 병협을 경영자 단체로 멋대로 규정하기도 했다.

너무 나갔다는 판단이다. 포괄수가제가 개업의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이고, 개업의 대표로서 의견 개진 정도는 필요하다. 그러나 거칠고 선동적인 방식에 국민이 과연 공감하고 박수를 쳐 줄까. 그가 일개 의사 모임이 아니라 정부의 의료계 파트너 대표라는 간단한 사실만 기억했다면 이런 식의 자극적인 언행은 없었을 것이다. 물 불 안 가리고 전면에 나서는 의협 회장의 모습도 일반인이 보기엔 웬지 낯설고 불안하기 까지 하다. 자신을 아직도 전국의사총연합 대표로 여기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김진각 여론독자부장 kimj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