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 역사 교과서, 일본군 위안부, 강제징용 등 한일 양국의 민감한 문제가 언론에 보도될 때 한국 언론사 특파원으로서 이들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묻는 일본인의 전화를 종종 받는다. 전화한 사람은 남성이 많은데 목소리를 통해 짐작한다면 그들 대부분은 50, 60대로 추정된다. 실제 대화를 하다 보면 그들 중 다수가 보수우익 성향이라는 것도 알 수 있다.
전화를 가장 많이 받았던 것은 지난해 8월 신도 요시타카(新藤義孝) 등 자민당 의원 일행이 울릉도를 시찰하겠다며 한국 입국을 시도하던 때였다. 한국 정부가 신도 의원 일행의 입국을 거부하겠다고 발표하자 특파원에게라도 항의를 하겠다는 심산이었는지 전화가 많이 걸려왔다.
그 중 잊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그는 "한국이 폐쇄적인 국가가 아닌데 일본 국회의원의 한국 방문을 허가하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첫 통화에서부터 강한 어조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그는 신도 의원이 공항에서만 머물다가 한국 땅을 끝내 밟지 못한 채 일본으로 귀국한 이후 다시 전화를 걸어와 "한국이 독도 문제를 어렵게 하고 있다"며 한국의 책임을 물었다. 기자가 "신도 의원 일행이 울릉도를 방문하려는 것은 뭔가 일을 꾸미려고 하기 때문인데 한국 정부가 그것을 알아챘기 때문에 입국을 못하게 한 것 아니겠느냐"고 하자 그는 "누구나 갈 수 있는 한국 땅에 일본의 특정인만 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한국 정부의 숨겨진 의도"라고 반박했다. 그는 그 뒤에도 현안이 생길 때마다 꾸준히 전화했다. 처음에는 그가 일본과의 외교 문제에 관한 한국인의 생각을 알고 싶어한다고 여겨 나름대로 친절하게 응대했다. 하지만 그는 점차 자신의 생각만을 일방적으로 주장했다. 특히 지난해 연말에는 일본대사관 앞 위안부 평화비 설치와 관련해 "한국이 일본을 의도적으로 욕보이기 위한 조치가 틀림없는데 한국 언론은 왜 가만히 있는 거냐"고 다그쳤고 "시민단체의 압력에 언론이 굴복해, 평화비를 세워서는 안된다는 말을 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고 비아냥거렸다. 그는 올해 초 또다시 전화해 "한국 정부가 제주 강정마을에 건립을 추진중인 해군기지는 결국 일본을 향한 것으로, 일본을 적군으로 삼기 위한 의도"라고 트집을 잡았다.
이 사람뿐 아니라 황당한 이야기를 하는 전화가 많아 전화 받기가 망설이던 중 며칠 전 사무실에 50대로 추정되는 일본인이 전화를 해왔다. 그는 "오래 전 한국에서 몇 년 동안 거주한 경험이 있어 서투르지만 한국어로 이야기하겠다"고 말을 시작한 뒤 최근 화제가 된 일본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 판결에 대한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했다. 그는 "일본 정부가 서울 종로구 중학동에 있는 주한 일본대사관을 미쓰비시중공업 등 일본 기업에 매각하고 건물을 매입한 기업은 이 건물을 일반에 매각한 뒤 그 대금으로 한국인에게 보상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현실성 여부를 떠나 징용 피해자의 보상에 대해 일본 정부와 기업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미로 들렸다.
"지금까지 많은 일본인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지만 이런 식의 이야기는 처음"이라고 했더니 그는 "많은 일본인이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데 그것은 분명 잘못"이라고 사과했다. 그는 "과거 한국을 식민지로 삼고 저질렀던 과오에 대해 개인적으로 다시 한번 사죄한다"고 거듭 말하기도 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일본에 우익 정치인이나 보수세력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며, 나처럼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며 "이런 사실을 한국인에게 알려주고 싶어 전화했다"고 말했다. 일본의 양심이 아직도 살아있다는 사실을 그 전화 통화로 확인할 수 있었다.
한창만 도쿄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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