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비전 송 콘테스트'는 국내에는 아직 생소하지만 유럽에서는 최대 음악축제다.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에서 지난달 26일 열린 올해 대회만도 42개국에서 참가했고, 1억명 이상이 시청했다. 일부에서는 유럽방송연맹(EBU)이 2차 대전 후 허물어진 유럽의 화합을 위해 1956년 창설한 가요제가 취지와는 달리 상업성이 강한 저급문화로 변질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어느 때보다 '인권'이 부각된 대회였다고 CNN방송이 30일 전했다. 아제르바이잔 정부가 현 정권을 홍보하려는 의도로 준비했던 대회를 인권운동가들이 아제르바이잔의 열악한 인권 상황을 도리어 국제사회에 고발하는 계기로 삼았다는 것이다.
외신에 따르면 야권연대와 시민단체가 주축인 5,000명 가량의 시위대는 대회가 열리기 한 달 전인 4월 말부터 정치범 석방과 일함 알리예프 대통령 사임 등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이들 중 20여명은 시위 중 체포됐다. 이미 수감 중인 10여명의 야권 인사들도 석방을 요구하며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사실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가 정치색을 강하게 띈 것은 올해 뿐만이 아니다. 심사위원 평가와는 별도로 참가국 시청자들이 자국을 제외한 외국팀에게 점수를 주는 독특한 방식으로 우열을 가리다 보니 당시 유럽 내 정치이슈에 따라 우승자가 결정된 적이 많았다. 2003년 미국과 함께 이라크전에 참가한 영국은 시청자 점수에서 0점을 받은 반면, 미국의 기지사용 요구를 거절한 터키는 우승을 차지했다.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2009년에는 조지아가 당시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를 조롱하는 가사가 허용되지 않자 불참했다. 아제르바이잔과 국경분쟁을 벌이고 있는 아르메니아 역시 올해 출전을 거부했다.
이번 대회에서는 러시아 대표로 출전해 2위를 차지한 '브라노프스키에 바부쉬키'(브라노보의 할머니들) 그룹이 가장 눈길을 끌었다. 인구 150만 명의 러시아 중부 우드무르티야 자치공화국 출신인 이들은 최연소 멤버가 54세일 만큼 할머니들로만 구성된 8인조 그룹으로, 이번 대회엔 6명이 무대에 올랐다. 러시아 전통의상을 입은 할머니들은 정겨운 시골풍경을 묘사한 가사와 순박한 춤으로 후한 점수를 받았다. 1위는 열정적인 춤과 함께 '유포리어'를 부른 스웨덴의 로린이 차지했다. 스웨덴은 74년 영국 브링턴에서 열린 유로비전 가요제에서 아바 그룹이 '워터루'로 첫 우승을 차지한 이후 5번째로 우승자를 배출했다. 스웨덴은 전년도 우승팀 국가가 다음 대회를 개최한다는 규정에 따라 내년 대회 주최권도 손에 넣었다.
이태무기자 abcdef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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