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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품값 강제 집행" 황당한 엄포, 어~ 하다 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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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품값 강제 집행" 황당한 엄포, 어~ 하다 당한다

입력
2012.05.31 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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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전주에 사는 직장인 오모(28)씨는 이달 초 T교역 재산강제집행계로부터 “247만원의 물품 대금이 미납돼 재산을 압류하겠다”는 내용의 ‘강제집행 착수 통보’를 받았다. 뜻밖의 물품 대금 변제 독촉을 받은 오씨는 T교역에 문의를 했다 황당한 답을 들었다. 오씨가 세상물정 모르던 고교 3학년 때인 2002년 당시 전화상담을 통해 판매했던 자격증 교재 값 50만 원에 이자가 붙은 금액이라는 것이었다. 오씨는 “당시 미성년자라 잘 모르고 후불로 교재를 받았다. 쓸모가 없어 보여 반품하려 했더니 판매처에서 ‘안 된다’고 해 실랑이를 벌여 결국 돌려보냈다”며 “10년간 교재비 청구서가 날아온 적도 없는데 이제 와 이자까지 쳐서 갚으라니 어처구니 없다”고 말했다. 오씨는 “당시 거래 내역을 확인해 봐야겠다”고 했지만 T교역은 “법원이 재산에 대한 강제 집행을 허가하는 지급 명령을 2006년에 확정했다”며 버티고 있다.

이런 행태의 ‘일방적 채권 추심’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다. 일방적 채권 추심이란 채권자 신청만으로 법원이 채무자에게 빚을 갚으라고 하는 약식 독촉절차인 지급명령. 전문 사설채권추심업체들이 이를 악용해 법에 어두운 소비자로부터 이미 변제 시효가 지난 물품 대금을 받아내고 있는 것이다. 이들 사설채권추심업체들은 부도난 방문·전화 판매 업체의 채권을 싸게 사들인 후 이들 업체와 거래 기록이 있는 소비자들에게 무작위로 물품 대금을 청구하는 수법을 쓰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다 보니 통상 3년의 시효가 지난 물품 대금은 갚을 의무가 없는 데도 10년 전 물품대금까지 법원의 지급명령을 빌어 협박하고 있다. W휴먼테크라는 채권추심업체가 이런 방식의 채권 추심을 시작한 2007년 이후 그 수법이 유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은 T교역, W자산회사, S자산관리공사, S신용정보 등의 이름을 가진 사설 채권추심업체들에 의한 피해가 많다는 게 한국소비자원 등 관련 기관의 설명이다.

이들 업체들의 일방적 채권추심에 대응해 채권이 확정되지 않게 하려면 법원의 지급명령 송달 후 2주 내 채무자가 이의 신청을 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소비자가 법률적 지식이 없기도 하거니와 오래 전 거래 내역을 증명할 계약서 영수증 등이 없는 경우가 태반이어서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일이 적지 않다.

더구나 거래 당시 대금을 납부했거나 반품을 한 소비자들까지 채무금 변제 요구에 시달리기도 한다. 최근 W자산회사로부터 무려 17년 전 당시 고3이던 아들이 방문 판매원에게 구입했다가 반품한 책과 CD 대금 50여만 원을 갚으라는 독촉장과 전화를 받은 60대 여성 김모씨가 그런 예다. 김씨는 “당시 민간소비자단체에 상담해 내용증명으로 계약 취소를 하는 등 뒤처리를 완벽하게 했는데도 또 문제가 될지 몰랐다”며 황당해했다.

심지어 거래 사실이 없는데도 물품 대금 독촉을 받는 경우까지 있다. 이들 채권추심업체들이 부도업체에 보관된 개인정보를 바탕으로 마구잡이로 추심 독촉을 하기 때문이다. 충북에 사는 30대 남성 이모씨는 지난해 S신용정보로부터 자신이 구매하거나 반품한 적이 없는 건강보조식품 대금 200만 원을 갚으라는 독촉을 2002년에 이어 또 받았다. 이씨는 “2002년에 계약 사실이 없다는 내용증명을 우편으로 보냈더니 연락이 뚝 끊겼다가 지난해부터 다시 대금 납부를 종용하고 있다”며 “언제까지 대응을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국소비자원이 2010~2011년 소비자상담센터를 통해 접수된 채권 추심 상담 9,443건을 분석한 결과 이처럼 채무 관계가 없거나 종결됐는데도 법원의 지급명령으로 피해를 본 경우가 21.5%인 2,027건이나 됐다. 이 가운데 197건은 소비자가 이의 신청을 하지 않아 빚으로 확정됐다.

한국소비자원 정동영 부산 본부장은 “피해자들이 법원의 지급명령에 지레 겁을 먹어 대응하지 않았다가 피해를 보는 사례가 꾸준히 늘고 있다”며 “하지만 ‘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률’에는 부당한 채권추심에 대한 처벌 조항이 없어 터무니없는 추심 독촉이 끊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우진기자 panoram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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