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 퇴직한 김국환씨
번번이 퇴짜에 맘고생
구청 전직지원센터서 전산·면접 요령 배워
인권위 상담사 취직 성공
무역업하던 김인술씨
한자 교재·교육법 특허
남다른 아이디어로 창업
강의 요청 쇄도에 행복
경제적 문제해결 외에 규칙적 생활에 건강도 덤
"노인들도 스펙을 쌓아야 합니다. 고령자를 위한 정보화교실 같은 곳에 나가서 계속 자기계발을 하는 사람에게 취업의 기회가 주어집니다."(4월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상담사로 취직한 김국환씨ㆍ65세)
"나만의 아이템을 끈기 있게 추진해야 기회가 생깁니다. 노인만이 갖고 있는 다양한 경험과 연륜을 살리면 꿈은 반드시 이루어 집니다."(창업 2년차 김인술 꿈아이서당 대표ㆍ78세)
취업과 창업에 성공해 각자의 일터에서 제 몫을 다하고 있는 노인들은 젊은이 부럽지 않게 활기차다. '나도 노동현장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라는 자긍심 때문일 것이다.
김국환씨가 교직에서 물러나 인생 2모작에 성공하기까지는 결코 순탄한 길이 아니었다. 은퇴 후 100곳도 넘게 이력서를 넣었지만 아무도 그를 환영해주지 않았다. 일반 기업에서는 '나이가 많다'며, 자원봉사단체에서는 '교장 경력의 고급 인력은 필요 없다'는 이유로 외면했다. 36년간 일해온 교단을 떠나 하는 일 없이 두 달을 지내다 보니 몸도 무겁고 여기저기가 아파왔다.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은, '잉여'의 삶이 마음을 고달프게 했다. 노인 우울증과 자살률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얘기가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이래선 안되겠다' 싶어 일자리 찾기에 적극 나섰다. 마포구 전직지원센터를 방문해 전산실무, 이력서 작성, 면접 요령 등을 배웠고, 고용노동부 구인ㆍ구직사이트 워크넷에 이력서를 등록했다. '퇴직 교장'이라는 옷을 벗어 던지고 오롯이 구직자라는 새 옷으로 갈아입은 것이다. 차근차근 준비를 한 결과 중앙선관위 선거연수원 강사로 취직할 수 있었고, 지금은 국가인권위에서 전화 상담업무를 맡고 있다.
창업의 길도 녹록지 않다. 퇴직금으로 치킨집이나 할까 하는 나태한 생각으로는 돈만 날리기 십상이라는 것.
30년 이상 무역업에 종사하다 은퇴한 김인술씨는 2003년부터 2년간 구청에서 취학 전 아동 한자 교육을 했던 경험을 살려 사업의 꿈을 키웠다. 한자를 그림처럼 그리는 아이들을 보고 '획 하나 하나를 다른 색깔로 그리면 놀이처럼 재미있게 배울 수 있고 기억에도 남겠다'는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한자 교재와 교육법에 대한 특허를 받았다. 무역업에 종사하면서 한자가 많은 일본어에 능통했던 것도 창업에 큰 도움이 됐다. "성공하는 창업 아이템은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취업과 창업에 성공한 노인들은 다양한 경험 외에도 남다른 책임감을 노인만의 장점으로 꼽았다. 2년간 커피전문점에서 일하면서 대학 평생교육원에서 바리스타 교육을 받고 지난해 자격증을 딴 뒤 바리스타로 활동 중인 나종례(65)씨는 "어떤 일을 맡기면 끝까지 해내는 책임감으로 직장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자랑했다. 노인 특유의 꼼꼼함으로 옷 매무새, 말투까지 신경을 쓰니 거래처나 고객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긴다는 것이다.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라는 속담처럼 철저한 준비 끝에 취업과 창업에 성공한 노인들은 현재 일자리에 대단히 만족하고 있다. 김국환씨는 "'진지는 잡수셨어요'라는 민원인의 말 한마디에 힘이 솟는다"고 했고, 김인술씨는 "여기저기서 내가 만든 교재와 교육법을 전수해달라는 요청이 끊이지 않아 미칠 만큼 행복하다"고 했다.
노인들에게 일자리는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해줄 뿐만 아니라 건강을 지켜주는 에너지원이기도 하다. 나종례씨는 "용돈을 벌기 위해 일을 시작했지만 규칙적으로 출퇴근하고 고객들과 대화하면서 건강까지 좋아졌다"며 "일자리가 없다고 고민만 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가까운 시청이나 구청에 찾아가 도움을 받으라"고 조언했다.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김예원 인턴기자(이화여대 영문학과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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