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쏟아내는 복지공약들의 소요재원을 유권자에게 알리려다 선거관리위원회에게 '선거 중립 위반'이라는 일격을 당한 정부가 아예 입법을 통해 관련 정보를 의무적으로 공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나섰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29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 집무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현행법상 선거에 미치는 영향 때문에 각 정당의 개별 복지공약에 대한 정부의 분석결과를 공개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권고나 호주 등 일부 국가의 사례를 참고 삼아 우리도 정치 일정이 있는 해에 재정 당국이 선거공약의 재정추계 결과를 담은 '선거 전 재정보고서'를 발간토록 정부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호주, 뉴질랜드, 네덜란드 등은 법률을 근거로 정치권 공약에 따른 재정 소요를 선거 직전 정부부처 또는 출연연구기관이 객관적으로 추계해 공표하고 있다. 박 장관은 "한 번 도입되면 되돌리기 어려운 복지제도의 영향을 검토해 국민에게 알리는 것은 재정당국의 마땅한 책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6월2일 'MB노믹스의 마무리 투수'를 자처하며 경제수장 자리에 취임한 박 장관은 '야구광'답게 특유의 비유로 지난 1년간을 요약했다. "등판 후 미국 신용등급 강등, 글로벌 재정위기, 국제유가 상승 등 '강타자'들을 연이어 맞았으나 신속한 대응체계를 구축해 '대량실점' 위기는 다행히 모면했습니다." 단기외채를 줄이고 물가상승률 완화와 고용 호조세 지속 등을 통해 '알찬 득점'을 이뤘다는 자평이었다. 하지만 "유럽 재정위기와 이란사태, 중국경제 둔화 가능성 등을 감안하면 승리를 낙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조심스러운 전망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종교인 과세 문제에 재차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세수 확대보다는 조세 형평성 차원에서라도 종교인을 과세대상에 포함해야 한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그는 다만, "모든 종교인의 합의를 얻어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고 당장 시행하기도 무리가 따를 것"이라며 "원만한 과세 시행을 위해서라도 종교인과의 협의 등 기본적인 절차는 늦기 전에 시작하는 게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올 하반기에도 경제가 계속 부진상태에 머무는 것 아니냐는 이른바 '상저하저'(상ㆍ하반기 모두 저조) 우려에 대해 박 장관은 "여러 통계와 의견을 종합해 볼 때 여전히 '상저하고'(상반기 저조, 하반기 회복)의 가능성이 조금은 더 높은 상태"라고 맞섰다. 최근 국내외 연구기관들이 잇따라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0.2~0.3%포인트씩 낮춘 것은 작년 4분기 경기둔화의 영향이 뒤늦게 반영된 결과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박 장관은 "정부가 작년 말 발표했던 3.7%의 올해 성장률 전망에도 역시 0.2~0.3%포인트만큼의 삭감 요인이 있지만 올해 2분기 성적과 하반기 전망이 여전히 불확실해 명확한 조정 폭을 예단하긴 어렵다"며 "31일 발표되는 4월 산업활동동향이 중요한 바로미터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공공기관 소유지분이 50%를 넘는 민간투자사업 시설 요금을 다른 공공시설 수준으로 낮출 필요가 있다는 지적에 대해 박 장관은 "국민연금 등의 투자는 공공의 성격이라기 보다 순수한 재무적 투자로 봐야 한다"며 반대 입장을 표했다. 최근 국회 예산정책처는 국토해양부 소관 민간투자사업 13개 가운데 공공기관이 과반 지분을 지닌 사실상의 공공사업이 6곳에 이른다며 투자규모 제한과 요금 하향 필요성을 제기했었다. 박 장관은 "요금을 낮추면서 국민연금 가입자의 손해를 강요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대담=고재학 경제부장 goindol@hk.co.kr
정리=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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