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럭 값이 일년 만에 반토막 났다 아입니까. 팔자니 사료값도 안 나올 테고, 그렇다고 그냥 두자니 수온이 올라 다 죽을 기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죽을 지경이라예.”
경남 통영시 연화도에서 20년째 우럭 양식업을 하는 천무율(55)씨는 요즘 하루 종일 한숨만 내쉬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작년 1만원이 넘던 우럭 값(1㎏ 기준)이 지금은 4,800원으로 떨어진 것. 요즘 양식어가에겐 ‘우럭파동’이 벌어지고 있다.
이유는 공급 과잉이다. 우럭시황이 좋았던 2년전 양식어가들은 치어를 대량으로 방류했다. 평년 방류량의 2배에 달하는 2억 마리를 풀었다. 천씨도 2010년 10만마리의 우럭치어를 방류했고 현재 17만마리가 양식장에서 자라고 있다. 2년전 대량 방류된 치어가 지난 봄부터 출하되기 시작하면서, 우럭값은 폭락을 거듭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수요는 공급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지난해 일본 원전사고 이후 수산물에 대한 소비자들의 우려가 커지면서 수요는 급감한 상태. 올 들어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고는 하나, 아직 일본 원전사고 이전 수준과는 거리가 있다. 수요는 줄었는데 공급은 2배 이상 되었으니 가격이 반토막 이하로 떨어지고 만 것이다.
팔아봤자 사료값도 못 건지는 상황이 되다 보니 어가들은 다 자란 우럭을 속절없이 양식장에 가둬두고 있다. 천씨는 “일부 어민들은 30%나 오른 사료 값 부담에 양식장에서 우럭을 며칠씩 굶기고 있다”며 “IMF때에는 수요감소로 우럭을 절반 가까이 폐사시켰었는데 그 때의 악몽이 생각난다”고 말했다.
현재 연화도에는 130여명에 달하는 어민들이 우럭파동에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25년 간 양식업에 종사했다는 구쌍봉(59)씨는 “사료값, 운영비 등으로 1억원의 빚을 졌다”면서 “지금 당장 우럭을 팔아도 톤당 300여만원씩 적자를 보게 된다”며 한숨을 쉬었다.
문제는 우럭양식어가들은 가격폭락으로 이렇게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데도, 대도시 횟집의 우럭값은 거의 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현재 서울 시내 횟집서 판매되는 우럭 값은 4만5,000원~6만원 대 가격이 1년전과 비슷하게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한 어민은 “횟집에서 우럭값을 낮추면 소비라도 늘겠지만 모든 게 유통업자와 횟집의 이윤으로 흡수되고 있다”고 말했다.
어민들의 불만은 정부당국으로도 향하고 있다. 한 어민은 “20년 전 어민 후계자 양성이란 명목으로 정부지원을 받아 양식을 시작했는데 당국은 이번 일을 그냥 보고만 있다”며 “수협에 공매를 한다 해도 시세가 바닥인데 손해보고 사 줄리 만무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어민은 “이 지역 특산물이자 생계수단인데, 배추나 한우 파동이 났을 때처럼 정부와 지자체가 소비진작을 위해 적극적인 홍보 및 공매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사실 2년전 치어 대량방류 때 정부나 수협이 이런 쏠림현상을 자제시켰어야 하는데, 이런 예측과 지도기능이 완전 실종됐다는 게 어민들의 하소연이다.
한가지 다행인 건 일부 유통업체들이 우럭 산지 직매입에 나선 것. 이마트는 통영시 연화도 어촌계와 직거래를 통해 횟감 등으로 총 10만 마리를 ㎏당 6,000원에 사들여 매장에서 판매하고 있다. 현지 어민에게 시세의 125%를 보장해 준 셈. 한 어민은 “앞으로 한ㆍ중 FTA까지 체결되면 값싼 중국산이 들어올 텐데 지금 같은 대응이면 희망이 없다”고 말했다.
통영=김현수기자 ddacku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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