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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었던 과거 이야기 팔아서 즐겁게 웃을 수 있다면 괜찮아요… 나를 세상에 나오게 해 주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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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었던 과거 이야기 팔아서 즐겁게 웃을 수 있다면 괜찮아요… 나를 세상에 나오게 해 주었으니까…

입력
2012.05.30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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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만에 받아본 사랑 되돌려주고파

다섯살에 고아원 나와 유흥가서 껌팔아… 굶주림·폭력·술·담배에 노출된 유년

살고싶지 않아 시간개념도 없었죠… 암환자 등 많은 분이 내 얘기에 힘얻어

날 다시 태어나게 한 노래·방송

노래하면 울화 풀리고 하고픈 말 표현… 성악 선생님 권유로 오디션 프로 출연

방송에 내 얘기 나가니 미칠 것 같아… 까발려지는 것 싫지만 사랑받게 돼 감사

'코갓탤' 준우승 이후

강연 많이 나가지만 수입은 거의 없어… 그래도 월세집 생기고 성격도 밝아져

평범한 일상이 나에겐 절실한 소원… 슬픔 극복하고 사람들과 융화하고 싶어

"오늘 일어나면 뭘 하지? 항상 이걸 고민했어요. 삶의 이유가 없었으니까. 오늘 죽어도 내일 죽어도 그만이라고 생각했어요. 먹고 자고가 중요했을 뿐. 힘들지만 않으면 됐었죠."

지난해 케이블채널 tvN '코리아 갓 탤런트'를 통해 한국의 폴 포츠(영국 BBC의 '브리튼스 갓 탤런트'로 세계적 스타가 된 외판원 출신 성악가)로 떠오른 최성봉. 이제 스물셋인 이 청년은 다섯 살 때부터 대전 유흥가에서 껌과 박카스를 팔며 살았다. "야, 인마" 혹은 "거지새끼야"로 불리며. 야학에 들어가 검정고시로 중학교 과정을 마치고 대전예술고에 입학하면서 학교 문턱을 처음 밟았다. 떡볶이 파는 아줌마가 붙여준 지성이란 이름을 썼던 그는 열네 살 때 절도로 경찰서에 붙들려갔다가 본명을 알게 됐다. 놀랍게도 멀쩡히 부모가 있었다. 어떤 사연인지 그는 버려졌고 '아무것도 없고 늘 배가 고픈 채로' 길바닥에서 꾸역꾸역 살아내야 했다.

그렇게 성인이 되고 막노동을 전전하며 지내다 우연찮게 방송에 출연했다. 믿어지지 않는 사연에 심금을 울리는 맑은 목소리는 사람들에게 충격과 감동을 안겼고, 미국 CNN과 영국 BBC 등 해외 언론에까지 소개되며 유명인이 됐다. 하지만 행운은 거기까지. '코갓탤' 준우승에 그친 후 대중의 관심에서도 멀어졌다. 더러 강연이나 공연을 다니고 있지만 형편은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말을 건네는 이들이 늘었지만 외로운 것은 여전하다.

그런 그가 자신을 보고 힘을 얻었다는 이들을 위해 희망을 전하는 메신저로 나섰다. 자신의 삶을 담아 최근 펴낸 책 (문학동네 발행)는 그런 노력의 첫걸음이다. 23일 햇볕이 뜨겁게 쏟아지던 날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방송 당시보다 체격이 좋아진 것은 물론 눈에 띄게 표정이 밝아졌다.

#죽을 만큼 싫었지만 내 얘기가 힘이 된다기에…

-책이 나왔는데 어떤가?

"사진이 좀 돼지처럼 나왔어요. 턱을 좀 깎아달라고 했는데 안 깎아주셨어요."

-'코갓탤' 나왔을 때보다 살이 좀 찐 것 같긴 하다. 키는 어떻게 되나.

"네 다이어트가 심하게 필요해요. 13㎏ 정도 쪘죠. 남자한테 키를 묻는 건 실례예요."

-책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얼마나 담았나.

"제가 기억을 잘 못해요. 그 길을 다니면서 회상을 해봐야 '아, 내가 이쪽에서 칼 맞았었지. 이쪽에서 잤었지. 밥을 먹었지. 울었지'하고 기억하죠. 그래서 책을 써주신 작가 누나 형과 동행해서 대전에 몇번 갔었어요."(책은 최성봉이 구술하고 작가가 재구성하는 식으로 썼다)

-충격적인 내용이 많다. 땅에 묻히고, 성폭행 당하고… 숨기고 싶었을 것까지 다 털어놨는데.

"그게 많이 빠진 거에요. 실제보다 약하다는 느낌이 있어요. 숨기고 싶지 않았어요. 어쨌든 저는 그렇게 살았던 아이였기 때문에 진실되게 쓰고 싶었어요."

-전에 "내 이야기가 알려지는 것이 죽고 싶을 만큼 싫다"고 말하지 않았나.

"많은 분들이 제 이야기에 힘을 얻는다고 하세요. 팬 중에 시한부 삶을 사는 분들도 많아요. 대장암에 걸려서 5개월밖에 못산다고 하신 분이 지금 1년 넘게 건강하게 살아 계시기도 하고. 23년 동안 받지 못했던 사랑을 갑자기 받고 있는데, 제가 다른 분들께 조금이나마 힘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하게 됐어요."

-책으로 묶기 전에 원고를 봤을 텐데. 어땠나.

"제가 책을 한번도 안 읽어봐서요. 야한 만화책은 많이 봤지만…. 제 이야기를 책으로 보니 감회가 새롭더라고요. 말 속에 그 사람의 세월이 담겨 있는 건데. 말을 글로 옮겨서 보여준다는 건 누군가의 마음을 두드리는 일이잖아요. 느껴질까? 단어 단어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게 될까? 하는 의문도 있었어요."

-어휘를 익숙하게 쓰지 못한다고 했는데 책은 잘 썼다.

"고급단어도 많이 알아요.(웃음) 문장으로 이어나가지 못해서 그렇지. 학교에서 교육을 받으신 분들은 '안녕하세요 최성봉입니다'라고 얘기하지만 저는 '최성봉입니다. 저는… 아 안녕하세요' 하는 식이죠. 어릴 때부터 그냥 길거리 어른들이 쓰는 말을 따라 하면서 말을 배웠기 때문에."

'코갓탤'은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처럼 스타성 있는 가수가 되는 길이 아니었기에 최성봉은 아직 매니지먼트사를 구하지 못했다. 개런티를 흥정하고 스케줄을 관리하는 이가 따로 없으니 행사비를 챙기지 못하는 경우도 꽤 된다. 막노동을 하며 지낸 예전보다는 나아졌지만 수중에 돈은 책 계약금으로 받은 1,000만원이 전부다. 그래도 집이 있다는 게 굉장한 행복이라고 좋아했다.

#보증금 1,000만원짜리 원룸 '분에 넘치는 나의 집'

-어디 살고 있나.

"서초동요. 제 집은 아니구요. 팬 일곱 분이 월세를 함께 내주고 계세요. 분에 넘치는 집에 살고 있습니다."(최성봉은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50만원의 작은 원룸에 살고 있다)

-강연 수입이 꽤 될 텐데.

"돈 받기가 좀…. 예를 들어 호스피스 병동 이런 데서 20만원 주신다고 한 적도 있는데, 받기가 미안하잖아요. 주시면 다시 거기에 내고 오기도 하고. 소년소녀 가장들이나 전과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도 돈 받기 그렇고. 대신 해외에서 받는 개런티는 꽤 높아요."(26일 스페인 안테나3 TV의 초청으로 출국하는 등 해외의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

-TV에서 봤던 것보다 성격이 밝은 것 같다. 밝아진 건가.

"사람을 만나고 싶어하지만 지금까지 벗이 없어요. 제 성격을 변화시켜야 된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웃어야 다른 사람도 웃을 수 있으니까. 그래서 요즘은 실없는 소리도 잘 합니다."

-또래 친구가 있나. 오디션 때 만난 친구들하고는 연락 안 하나.

"아니요. (휴대폰)번호를 주고 받고 못했어요. 다들 바빠서 제가 말을 꺼내면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고. 또래 친구를 간절히 원했죠. 준비하는 동안 쓸쓸하고 외로웠으니까."

#믿을 건 나밖에 없었던 어린시절

-글을 읽을 수 있게 된 건 몇 살 때인가.

"열다섯, 열여섯? 야학에 간 건 (출판사 관계자에게 묻더니) 2002,3년쯤 열세 살, 열네 살 때쯤 간 것 같아요, 월드컵 그 즈음에. 더듬더듬 눈치로 글을 읽을 수는 있었고요."

-책에도 시간에 대한 개념이 없어서 무슨 일이 몇 살 때였는지 정확하지 않다고 했다.

"그때 당시에는 별로 살고 싶지 않아서. 아마 그게 제일 컸을 거예요. 옆에서 너 이랬었지 하면서 기억을 되살려줄 사람도 없었고. 시간 개념 따위는 알 필요가 없잖아요."

-자꾸 고아원을 나오고 보호소를 나오고 했는데 왜 보호받을 수 있는 데서 도망쳐 나왔나.

"제가 요만했을 때(손으로 허리 아래를 가리킨다) 칼이 눈 앞에 와도 눈 하나 깜짝 안 했어요. 한번 고아원을 나오고 나서는 '인생 나밖에 없구나' 하고 살았고. 남에게 명령을 듣고 조언을 듣는 자체가 싫었어요. 고아원 수녀님들이 자라, 먹어라 하면 '내가 왜 당신 말을 들어야 하나' 반항심이 먼저 들었고. 그래서 나왔죠."

-정신과를 다닌다고 들었다. 후원이 있나.

"제 돈으로 하고 있어요. 학교 다닐 때 진작 다니고 싶었는데 반 애들 보는 시선이 무서워서 못 다녔어요. 어릴 때부터 감정 조절하는 게 힘들어서 고쳐 보고 싶었어요. 근데 (의사 선생님도) 어른이구나 싶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느낄 때, 네 나이 때 다들 겪는 성장과정이라고만 말할 때 정말 화가 나서 그만 둔 적도 있어요. '너의 인생을 다 알아'라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을 만나면 좀 화가 나요."

-섬세한 면이 있는 것 같다.

"어릴 때 여자 같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어요. 머리도 길고 완전 여자 목소리여서 나쁜 짓도 많이 당했어요. 저는 분명히 화를 내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귀엽다고 하더라고요. 그 귀엽다는 소리가 너무 싫었어요. 야학 들어 갔을 때도 귀엽다는 소리가 싫어서 건물을 부순 적도 있어요. 식당에 유리창 같은 거 돌 던져서 깬 적도 있고."

#방송, 발가벗겨졌지만 다시 태어나게 한

-노래 말고도 비보이도 했다고 들었다.

"춤에 흥미를 잃지는 않았지만 노래하는 게 더 좋았어요. 춤을 추면 몸이 힘들어서 다 잊게 되지만 마음 속 앙금이나 울화가 풀리지는 않아요. 제가 힘들 때 정작 누구한테 얘기하거나 할 사람은 없잖아요. 춤을 추면서는 그 스트레스를 풀 순 있지만 하고 싶은 말을 표현할 순 없었어요. 그런데 노래를 하면 스트레스도 풀고 내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으니까."

-어릴 때부터 술, 담배를 해서 목 관리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성악하는 많은 분들이 담배도 피우고 술도 드세요. 다섯 살 때부터 술, 담배를 했는데 안 좋은 건 알고 있지만 살아오면서 벗이었기 때문이죠. 절제하려고 노력하고는 있어요."

-방송에서 공개적으로 사연을 얘기하기 꺼려지지 않았나.

"저는 제 얘기가 방송에 나갈 지 몰랐어요. 노래만 준비해 갔어요. 그때 카메라 앞에서 한 시간 동안 얘기하라고 하더라고요. '노래하러 왔는데 왜 얘기를 하라고 하지' 처음엔 그랬어요."

-거짓말로 지어낼 수도 있었을 텐데.

"이미 정소쌤(최성봉에게 무료로 성악을 가르쳐준 박정소씨. '코갓탤' 역시 그의 권유로 나가게 됐다)이 다 얘기 했더군요. 조금 짜증났었죠. 무대에 올라가서 내 이야기를 하고 나서 노래를 부른다는 게 불쌍한 아이니까 들어달라고 하는 거밖에 안되니깐. 껌 팔아달라고 할 때 도와주세요 하면서 눈 깜빡깜빡 거리는 것처럼."

-외신에도 소개되고 반응이 뜨거웠다.

"과거를 지우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 끈을 놓아버리면 23년간 살아왔던 저 자신이 없어져 버리니까. 그래도 내 (진짜)이야기가 방송으로 나가니까 미쳐 버리겠더라고요."

-고등학교 친구들에게 연락해보진 않았나.

"예고에 워낙 잘 사는 친구들이 많아서. 고등학교 때 부모님이 교수라고 잘 산다고 거짓말을 했어요. 아직도 사람 만나는 게 제일 두려워요."

-음악 외에 흥미를 갖는 건? 책이나 TV는?

"알아가는 과정인데 아직까진 없어요. 텔레비전도 보지 않아요. 서서히 변화해 가겠죠."

-지금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데 좋지 않은가.

"꼭 그렇지는 않아요. 여러 가지 면이 있는데, 단발적인 관심은 사양합니다. 다가와서 인생에 대해 (뻔한 얘기들을 한마디 툭 던지면서) 조언해주는 분들이 있어요. 마음을 주시면 감사히 받아들이겠는데 그렇게 한마디 하고 다시 안 나타나요. 그럼 또 제게는 상처가 돼요."

-본인이 노래를 잘한다고 생각하나. 노래 연습은 어떻게 하나.

"아니요 절대. 연습은 집에서 혼자 하고 있고, 레슨 선생님한테 일주일에 한번 수업 받아요."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첨엔 뭔지도 몰랐어요. 방송에서 내가 다 까발려지는 게 매우 싫었어요. 그런데 23년 동안 못 받은 사랑을 받게 해준 것에 대해서는 감사하게 생각해요. 장단점이 있어요."

-본인 같은 아이가 있다면 나가 보라고 하겠나.

"이게 기회라고 하면 잡아야죠. 순간의 선택이 인생을 바꾸잖아요."

-힘든 이야기를 파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반대로 그렇게 팔아서 즐겁게 웃을 수 있다면 괜찮다고 생각해요. 저를 세상에 나오게 해주었으니까요."

-상금은 없었죠?

"네 슬프게도. 1등이 중요한 건 아닌데 돈은 아주 조금 아쉽더라고요. 다른 참가자들처럼 저도 가족이 있었으면 주위에 문자투표 하라고 독려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들었어요."

관심 갖는 이들이 많아서 최성봉은 방송 이후 꽤나 시달렸다. 자리를 함께한 문학동네 서영희 팀장은 "성봉이를 데리고 다니면서 인맥을 넓히려는 사람들도 꽤 있었던 것 같다"고 귀띔한다. 물밑에서 오간 얘기지만 새누리당 유력 관계자에게 국회의원 비례대표 제안도 받았다. 보수와 진보에 대한 인식이나 정치 철학이 없는 최성봉에게 정치는 먼 나라 이야기라 결국 철회되긴 했지만 분명 힘들 게 살아 온 개인의 성공스토리는 정치권의 러브콜을 받기에 좋은 소재였다.

#나의 소망은 평범해지는 것, 왜 돈에 연연하나요

-정치권 인사들과도 친분을 쌓았다. 만약 정치 입문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아마 비속어를 쓰게 됐을 거예요. 말로만 하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달라고. 도와줄게 하면서 이용하는 정치인들도 만났어요."

-청와대에도 가서 강연했다고 들었다.

"사회에 억울한 부분이 있어서 따다닥 했어요. 흥분해서 얘기했죠. 지금도 가출한 사람 부모에 대한 원망을 가진 사람들이 있잖아요. 권위 있는 사람들 말만 그렇게 위하는 척하지 말아달라고요."

-본인과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을 보면 어떤가.

"챙겨주고 싶어요. 제가 칼에 찔렸다고 해도 나를 찌른 사람이 밥을 사준다면 저는 따라가서 먹어요. 배고픈 아이에게는 그게 당연한 거예요.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챙겨줘야 하고요. 뭐니뭐니해도 그들이 원하는 것을 주면 돼요. 벗이 없어서 무관심 때문에 괴로워하는 아이들에게는 사랑만 주면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는 거죠."

-본인은 왜 먼저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고 먼저 손을 내밀지 않았나.

"도와준다고 먹을 것을 준다고 해도 거절했어요. 열 번 정도 권하면 그제서야 먹었어요.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어요. 먹고는 싶었지만 마음을 열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냥 생각 할 때는 배고플 때 먹을 것을 주면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이러잖아요. 그런데 매일 모르는 사람들이 와서 그러는데 마음을 다 줄 수는 없었어요. 마음을 열고 밥을 먹고 나면 '나중에 보자' 하고는 안 와요. 그게 다 상처로 돌아와요. 반복되다 보니 줘도 먹기 싫은 거죠."

-여자친구 만나고 싶은 생각은?

"그보다는 결혼할 상대를 만나고 싶어요. 버팀목이 될 수 있는 枰?벗 있잖아요. 전 23년 동안 사랑을 받지 못했어요. 가족들의 사랑, 친구들의 사랑. 그런데 제 여자친구는 그런 사랑을 그 동안 받았을 거 아녜요? 그런 사랑을 제가 해주지 못하면 미안할 것 같아서 두려움도 커요. 그런데 제 얼굴에 지금까지 여자친구를 한번도 못 사귀진 않았습니다.(웃음)"

-큰 돈을 벌게 되면 뭘 하고 싶나.

"돈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시는데 저는 사실 먹고 사는데 지장만 없으면 돼요. 나머지는 뭐. 저 기부도 많이 해요. 알게 모르게 툭 던지고 와요. 서울 올라와서 제일 웃긴 게요, 특히 강남. 쓸데없이 너무 비싸요. 시급은 4,300원밖에 안 하는데 밥값은 1만원이 넘어가고 너무 비싸요. 제가 만났던 분들 중에 밥 한끼에 10만원씩 쓰는 분도 있어요. 서울 사람들은 돈 기준치가 너무 높아요. 돈이 간절하면 두 탕 뛰면 되잖아요. 술은 다섯 살 때부터 먹었고 담배도 다섯 살 때부터 피웠어요. 사회생활이 19년 차예요, 제가."

-노래 말고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많죠.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저한테는 절실한 소원이었어요. 그런 걸 하고 싶어요.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에 아직 벽을 느껴요. 무대나 강연을 할 때는 말이 막히지는 않는데 이렇게 단란한 자리는 부담이 커요. 어릴 때부터 뼛속 깊이 갖고 있던 것들을 극복하고 사람들과 잘 융화하고 싶어요."

채지은기자 cje@hk.co.kr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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