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 대표 여배우 서이숙(45)이 무대로 돌아왔다.
지난해 6월 갑상선암 수술을 받고 회복기를 거쳐 1년여 만에 다시 서는 무대는 6월 24일부터 7월 29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선보이는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일본 극작가 하타사와 세이고 원작). 15년이라는 오랜 무명생활을 거치고 2003년 '허삼관 매혈기'를 통해 연기력을 인정 받은 탓일까. 손숙, 박용수, 길해연, 박지일, 이대연 등 연극계 명배우가 총출동하는 캐스팅 속에서 그의 이름이 유난히 빛난다.
23일 서울 대학로에서 만난 그는 "오랜만에 연습실에서 종일 대본을 읽고 분석하니 이제야 제대로 연기하는 기분"이라며 설레는 마음을 전했다. "1년 꽉 채워 쉬려고 했는데 더 이상 연극 출연을 미루면 오해가 너무 커지겠더군요. 그래서 수술 전에 '회복 후 첫 작품을 같이 하자'고 약속 했던 제작사(신시컴퍼니)의 이번 연극으로 다시 무대에 서게 됐죠."
그가 말하는 오해란, 최근 연극 몇 편의 출연을 고사한 일이다. 대표작 '고곤의 선물'의 올해 초 재공연 등 화제작 여러 편을 건강 회복을 위해 거절했다. 하지만 TV 드라마에는 최근 종영한 '신들의 만찬'의 부주방장 영심 역 등으로 간간이 얼굴을 비쳤다. "목소리가 원래 상태로 돌아오는 데까지 예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TV 연기는 마이크를 사용하니까 연극처럼 많은 에너지를 쏟지 않아도 되잖아요. 그래도 그리웠던 무대 연기를 위해 당분간 드라마 출연은 미루기로 한 걸요."
TV 출연으로 배운 게 많다. 호흡의 완급 조절과 섬세한 연기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그는 "특히 이번 공연은 워낙 좋은 배우들이 모여서 더 설렌다"며 "배역을 객관화하는 게 중요하다는 연기 철학에도 더 확신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저는 '혼신의 연기'와 같은 수식어로 저를 설명하고 싶지 않아요. 그보다는 어떻게 하면 상대 배우의 말을 잘 듣고 텍스트를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편이죠. 이번 공연에서도 따돌림 가해 학생의 엄마 역할이지만 나쁘게만 보이도록 연기하지는 않을 생각이에요."
배드민턴 코치로 일하던 중 연기를 시작한 서이숙은 1989년부터 극단 미추에서 단역, 조역을 거치며 내공을 키웠다. 우연처럼 보이는 연기와의 만남은 "경기 연천 시골 출신이라 연기자라는 직업 정보가 없었던 탓일 뿐 마음은 늘 그쪽으로 가 있었다"고 말한다.
아프면서 느낀 것도 적지 않다. 매년 공연 성수기인 겨울을 앞두고 지하 연습실에서 가을을 보내 왔던 그는 지난해 연기를 쉬면서 새삼 은행잎의 아름다움을 느꼈다고 한다. "가을을 만끽할 수 있는 그 순간이 고맙게 여겨지는 한편 고비를 하나하나 넘으며 안으로 단단해지는 방법을 배우는 게 인생이라는 걸 깨달았죠."
1년 전과 비교해 무엇보다 달라진 것은 친화력이다. 낯가리던 예전과 달리 막내 스태프까지 먼저 챙길 정도로 성격이 활달해졌다. "바닥부터 시작해 이제야 조금 빛을 보나 보나 싶은 때에 몸이 아파 속상했어요. 조금 늦되더라도 인성 좋은 사람은 좋은 배우가 된다고 믿기 때문에 마음 편하게 먹으려고 해요. 사람 이야기를 하는 게 곧 연기인데 따뜻하지 않은 심성으로 하는 연기는 가짜니까요."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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