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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거꾸로 가는 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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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거꾸로 가는 기차

입력
2012.05.29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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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친구들이 오랜만에 모인 강변 야유회. 그곳에 느닷없이 나타난 중년남자를 달가워 않는 친구들의 표정. 아랑곳 없이 마이크를 들고 고래고래 행패를 부리던 남자가 돌연 기찻길로 뛰어든다. "나 돌아갈래!" 절규를 삼키는 기적소리와 함께 뒤에서 덮쳐 드는 기차…. 다음 장면부터 기차는 거꾸로 달리며 세월에 치어 망가져가는 남자의 삶을 더듬어간다. 20년 전 바로 이 강변에서 첫사랑 소녀가 박하사탕을 쥐어주던 그 아름답고 순수했던 젊은 시절로까지.

■ '거꾸로 가는 기차'는 시간을 되짚어가는 플래시백(flashback) 형식의 영화 에서 장면전환마다 등장, 줄거리를 이끈다. 단순한 필름 되감기 기법이지만, 누구에게나 간직하고픈 추억이 있을 법한 기차의 애잔한 이미지와 겹쳐져 속절없이 관객의 마음을 적신다. 기차는 시간처럼 앞으로만 끝없이 달려갈 뿐, 뒤로 갈 일이 없다. 거꾸로 가는 기차는 그러므로 현실에선 불가능한, 그러나 절절하기 이를 데 없는 과거로의 회귀욕망을 상징한다.

■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거꾸로 가는 기차를 현실에서 경험할 수 있던 영동선철도 흥전역과 나한정역 사이 스위치백(switchback)구간이 내달 사라진다. 인접 산간을 나선으로 뚫은 솔안터널이 개통된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석탄수송을 위해 일찌감치 철도가 놓인 이 구간은 경사가 너무 가팔라 원래는 승객을 내려 걷게 하고 기차는 쇠줄로 끌어올리던 곳이다. 1960년대 초에야 승객들을 태운 채 앞뒤 지그재그로 산을 오르는 스위치백 방식으로 바뀌었다.

■ 코레일은 폐선 후에도 이 구간은 관광용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그런들 예전 그 맛과 같으랴. 지난 해부터 서둘러 이 곳을 찾는 여행객들이 부쩍 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이 아니어도 거꾸로 달리는 기차는 누구에게나 돌아가지 못할 그리운 과거로의 시간여행과도 같은 것이었으리. 구비구비 산자락을 끝없이 휘감아 도는 영동선을 타고 뒤로 가는 기차에 신기해하며 강릉바다로 여행가던, 내 어린 시절의 아련한 추억 한 자락도 함께 접힌다.

이준희 논설실장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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