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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2014년 수능 언어영역의 퇴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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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2014년 수능 언어영역의 퇴행

입력
2012.05.29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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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수학능력시험 언어영역(국어)에 문법문제는 없다. 이것은 매우 바람직한 것이다. 그런데 문법 전공 교수들의 생각은 다른 것 같다. 오래 전 내가 1급 정교사 연수를 받을 때의 일이다. 한 번은 문법 전공 교수가 나와서 문법문제가 수능시험에 출제돼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그는 문법문제를 수능에 출제되게 하기 위해 문법 전공 교수들이 노력하고 있다는 말도 했다. 나의 귀에 그의 주장은 학생들의 국어 공부를 1980년대 방식으로 되돌려 놓자는 것으로 들렸다.

수능 초기엔 존재하지 않던 문법문제가 언제부턴가 한두 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이러한 문법 전공 교수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다행히 아직까지 그것들은 엄밀한 의미의 문법문제가 아니었다. 즉 어떤 문법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만 정답을 찾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문법문제처럼 보이는 독해문제였다.

시험은 학생들의 공부 방향에 커다란 영향을 준다. 시험은 학생들의 학습 내용과 학습 방향을 결정한다. 시험에 단편적인 지식을 암기하는 문제가 출제되면 학생들은 단편적인 지식을 암기하는 공부를 한다. 시험이 선다형 객관식으로 출제되면 학생들은 글쓰기 공부를 하지 않는다. 나아가 시험은 교사들의 수업 내용을 결정하기도 한다. 시험에 단편적인 지식을 묻는 문제가 출제되면 교사들은 단편적인 지식을 전달하는 수업을 하게 된다. 시험이 객관식으로 출제되면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글을 쓰게 하지 않는다. 이렇듯 시험은 중요하다. 국가시험인 수능시험은 더더욱 중요하다.

현 고2 학생이 시험을 치르는 2014학년도 수능은 A·B형 수준별 시험의 형태로 치러진다. 그 예비시험이 얼마 전 치러졌다. 예비시험의 국어문제를 검토하면서 나는 수능의 퇴행을 느꼈다. 퇴행의 핵심은 문법문제의 대폭적인 증대다. 전체 문제수를 줄였음에도 문법문제는 5문제로 늘렸다. 게다가 그 문제들은 이제 본격적인 문법문제의 성격을 상당 부분 갖추고 있다. 문법 지식을 충분히 숙지하고 있어야 안심하고 풀 수 있는 문제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제부터 수험생들은 본격적인 문법 공부를 해야 하는 부담을 가지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것은 어쩌면 학생들에게 문법이라는 새로운 과목이 하나 신설되는 효과를 줄 것이다. 문법을 위한 사교육까지 등장할 수 있다.

게다가 새로운 수능의 국어에서는 말하기(화법) 문제가 신설된다. 아무런 의미도 없이 시험관리만 어렵게 만들던 듣기문제가 사라진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듣기문제를 대신해 말하기(화법) 문제를 새로 만든 것은 대안이 될 수 없다. 말하기 문제를 신설한다고 국어교육이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아니다. 말하기 문제로 인해 학교수업에서 토론수업이 활성화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수능에 쓰기(작문)문제가 있었음에도 학교수업에서 글쓰기 수업이 활성화되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다. 사실 5지선다형 객관식 문제를 통해 말하기와 글쓰기 능력을 측정하고 말하기와 글쓰기 수업을 활성화시키겠다는 것 자체가 웃기는 짓이다. 신설된 화법문제는 그에 대비하는 객관식 문제풀이 수업만을 새로 생기게 할 뿐이다.

그리고 화법문제의 등장은 화법이론 공부에 대한 부담을 학생들에게 줄 수 있다. 물론 예비시험 문제를 살펴보니 다행히 아직까지는 화법에 대한 이론공부는 전혀 필요 없어 보였다. 하지만 화법문제의 존재만으로도 학생들은 그런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학생들의 학습 부담을 줄여 준다는 취지에서 사회탐구(인문계)와 과학탐구(자연계)에서 과목을 하나씩 축소한 것이 불과 얼마 전이다. 어차피 학생들의 부담을 다시 늘릴 거라면 문법과 화법을 없애고 그 대신 사회탐구와 과학탐구의 과목 수를 원래대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것이 교육적으로 훨씬 더 가치 있는 일이다.

이기정 서울 북공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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