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6월 4일 톈안먼(天安門) 사건 당시 베이징(北京) 시장이었던 중국공산당 원로 천시퉁(陳希同ㆍ82)이 톈안먼 사건은 최고 지도층의 권력 투쟁 과정에서 비롯된 비극이었다고 주장하면서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을 겨냥했다.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29일 천 전 시장이 방담록 발간과 관련, “톈안먼 사건은 피할 수 있었다”며 “적절하게 처리됐다면 아무도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그는 또 “나는 사태가 빨리 종결되길 바랐으며 피 흘리는 일 없이 해결 가능할 것으로 믿었다”며 “그러나 내부 권력 투쟁과 역학 관계 속에서 유혈 강경 진압으로 이어졌고 이는 아무도 원치 않았던 결과를 낳았다”고 주장했다. 천 전 시장은 “하룻동안 수백 명이 숨진 것은 당시 시장으로서 유감”이라면서도 “그러나 나는 꼭두각시처럼 지시에 따랐을 뿐“이라고 강변했다.
천 전 시장은 톈안먼 사건 당시 무력 진압을 주도한 강경파의 핵심 인물이라는 게 기존의 평가다. 덩샤오핑(鄧小平)에게 사태를 과장 보고, 인민해방군을 끌어들이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주장은 자기 변호의 성격이 강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나 그는 당시 실권자인 덩샤오핑의 집에 간 적도 없으며 톈안먼 사건을 반혁명 폭동으로 규정하고, 학생들에게 동정적이었던 자오 전 총서기의 실각을 결정한 1989년 5월 18일 회의에도 참석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천 전 시장은 한발 더 나아가 장 전 주석을 겨냥, 정치 개혁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점점 강해지는 중국에는 좀 더 민주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한발 한발 정치 개혁을 실현, 불공정하고 부당한 일들을 바로잡아 가야 한다”고 말했다. 천 전 시장은 자신이 부패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것은 장 전 주석에게 숙청당한 것이라며 “문화대혁명 이래 가장 큰 누명”이라고 주장했다. 톈안먼 사건 이후 베이징시 서기와 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까지 올랐던 그는 1998년 55만위안(약 1억원)의 뇌물을 받고 공금을 유용해 호화 저택을 지은 혐의로 징역 16년형을 선고받고 수감된 뒤 2006년 보석으로 풀려났다. 당시 정가에선 상하이방(上海幇)의 좌장인 장 전 주석이 베이징방의 중심인 천 전 시장을 올가미를 씌워 제거한 것이란 분석이 있었다.
방담록이 톈안먼 사건 23주기를 앞두고 출간된데다 출간 과정이 톈안먼 사건의 온건파와 무관치 않다는 것도 주목된다. 책을 낸 홍콩의 신세기출판사는 자오 전 총서기의 비서였던 바오푸(鮑樸)의 아들 바오퉁(鮑彤)이 사장으로 있다. 천 전 서기의 진술을 정리한 80세 고령의 저자 야오젠푸(姚監復)는 국무원발전연구중심 연구원 출신이다. 이 기관은 톈안먼 사건 당시 자오 전 총서기를 수행, 학생들과 대화를 모색한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맡고 있다. 원 총리 역시 자오 전 총서기의 비서를 지낸 바 있다. 따라서 현 지도부가 적어도 방담록 발간을 묵인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이를 두고 자오 전 서기 등에 대한 명예회복 움직임과 관련이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重慶)시 서기 낙마 이후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장 전 주석을 경계한 것이란 시각도 있다. 27일 홍콩에선 2,0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톈안문 사건의 재평가를 요구하는 시위도 열렸다.
베이징=박일근특파원 ikpark@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